[삶의 향기] 내 영혼 소생하는 봄이 오길

등록날짜 [ 2018-04-10 13:14:01 ]

출·퇴근길 ‘내부 수리 중’ 점포 보며
세월 앞에 언젠가 사라질 인생 깨닫게 돼
남은 세월 천국 소망 굳게 붙들고
뜨겁게 주님 사랑하며 살고 싶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대다수 지하철 역사(驛舍)가 그러듯 구로역에도 지하철에서 개찰구로 이르는 보행자 통로 한쪽 벽면은 다양한 먹거리 점포와 편의점이 들어서 있다. 지나다 보면 점포를 가리고 ‘내부 수리 중’ 푯말을 걸어둔 곳이 있는데 ‘이번엔 어떤 점포가 들어설까’ 궁금증이 인다.

며칠 지나지 않아 새로운 모습의 점포가 등장했다.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사장과 아르바이트 청년 몇 명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 몸을 부딪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도 저런 점포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도 가져 봤다. ‘오늘은 저 점포에 서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숫자를 헤아려보는 재미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사람 수가 줄더니 급기야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장면이 목격됐다. 알바생도 표정 없는 눈빛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 점포도 멀지 않아 ‘내부 수리 중’ 푯말이 붙겠구나.’ 동시에 ‘내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출근할 때 최저기온에 맞춰 옷차림을 챙겼는데 지금은 낮 기온을 보고 집을 나선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을 맞은 것이다.

내게 주어진 육신의 잔여기간도 그만큼 줄고 있는 것 아닌가. 스마트폰 건전지 소진되듯 내 육신의 총량도 살아온 세월만큼 차감되고 있다. 가슴이 철렁하는 다급함이 일었다. 목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하나님 말씀’과 ‘세월’이라는 부분이다.

어느 누구 예외 없이 육신의 마지막 때를 맞게 되고, 긍휼 없는 심판대에 설 것이다. 그런데 어제 살았고 오늘도 살았으니 당연히 내일도 살 것이라는 무의식 속에 영원(永遠)을 살기라도 할 듯 착각하는 것 아닌가.

사람의 연수가 강건해야 칠십이요 팔십인데, 나 또한 적지 않은 세월을 건너왔다.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 보니 세월의 수만큼 죄만 쌓았고 시간의 거리만큼 주님과 멀어져 있는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이 그려졌다.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는 심판이 있는 것을 진정으로 믿었다면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머리와 입으로는 ‘주여! 주여!’ 외치고 회칠한 무덤처럼 외형만 있을 뿐 실상은 허상과 가증과 멸망의 것으로 가득 채웠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예쁜 짓 좀 하고 싶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손가락 길이가 모두 다르고, 자기 자식 모두 예쁘지만 같은 자식이라도 예쁜 짓 하는 자식이 더 예쁜 법 아닌가? 이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대속해 주신 주님의 신부로서 정절과 순전함으로 영적 귀티를 풍기고 싶다.

오늘, 새로운 각오로 ‘모래시계 노트’를 만들었다. 지금부터 만 80세 되는 시점까지 총 날짜를 산출하고 이를 월별로 나눈 뒤 매일 신앙상태를 점검하는 항목을 표시했다. 얼마나 끈기 있게 진행할지 알 수 없지만 가다가 넘어지면 그만큼 주님 앞에 다가선 것 아닌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주님이 계시기에 부러운 것 없었고,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도하고 찬양했던 그 첫사랑을 회복하는 영적 소생의 봄을 맞고 싶다.



/윤웅찬 집사
13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7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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