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갈등 해결의 지혜

등록날짜 [ 2018-08-28 16:02:45 ]

상대를 불쌍히 여기고 남 아니라 자신 탓할 때
내 태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서로 협력하게 돼


직장은 고를 수 있어도 상사와 동료는 선택할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뜻이다. 비단 직장생활만 그럴까? ‘사랑과 용서의 종교’로 불리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집합체인 교회는 예외일까? 갈등을 한자로 표기하면 ‘葛藤(칡 갈, 등나무 등)’이다. 칡뿌리와 등나무처럼 서로 얽히고설켰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 모습만 상상해도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질까.

내가 일하는 곳은 아주 적은 사람들이 함께한다. 누구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 하지만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종전 직장에서는 많은 구성원과 부서로 이루어져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가 있으면 내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거나 반대로 그를 보낼 수도 있기에 갈등 해소가 비교적 용이했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은 소수 인력이 한곳에서 일하다 보니 갈등이 발생되는 경우 치유 방법도 마땅치 않고 상처도 크게 남게 된다.

흔히 말하는 구세대 사람인 나로서는 젊은 친구들의 사고(思考)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사회생활에 대한 기본적 소양이 갖춰지지 않았거나 훈련이 안 된 경우, 호탕함과 무례함을 분별하지 못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를 힘들어했다.
결국 가르치려는 사람과 마지못해 이를 따르는 직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표면적 평온함을 가장한 긴장과 냉대, 이로 인한 피곤이 지속됐다.

날마다 회개하며 상대방 품기를 기도했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을 향한 연민이 내 심령에 일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울림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하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보아온 문자적 말씀이 아니라 내 자신을 책망하는 주님의 음성으로 다가온 것이다.
환경은 그대로인데 생각과 시각이 바뀌니 오히려 그들에게 인정받고 평온과 협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결국은 내가 문제였고 내가 변해야 했던 것이다.

교회생활은 어떤가. 올해로 2년 차 남전도회 기관장을 맡고 있으니 큰 나뭇가지 끝에 위치한 제일 연약한 부분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곳은 세포분열이 가장 왕성히 일어나는 생장점이며 교회의 사명을 이뤄 가는 최일선임을 생각하면 그 역할과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도 주님과 교회가 원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니 이것이 한 달란트 받은 자의 게으름은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본다.

리어카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려면 구성원 전체가 힘을 합해 밀고 당겨야 하거늘, 편안히 가겠다고 올라타거나 질질 끌려가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우물을 깊이 파서 시원한 생수를 나누는 자가 있는가 하면, 파 놓은 우물 벽에 들러붙어 그 물을 빨아 먹는 이끼로 사는 자도 있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기관장이라는 직분이 오히려 회원들이 주님께 가까이 갈 기회를 막고 있지는 않는가.

111년 만의 폭염, 최고·최장의 열대야, 각종 기록을 경신하며 이 땅에 숨 쉬고 있는 모든 사람을 처음 경험하게 했던 더위도 세월에 밀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인다.

내게 맡긴 직분과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지 돌이켜 살펴보아 내 영혼의 때의 결실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가을을 맞아야겠다.



/윤웅찬 집사
15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89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