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가게가 여기 한 군데뿐인 줄 알아?
남전도회 모임에 쓸 과일 사러 마트 갔다가
계산원 불친절에 속으로 화내며 그냥 나와
한동안 부끄러움과 자책감에 마음 편치 않아
갑질 사태는 ‘역지사지’· 공감능력 부족 탓
요즘은 몸이 찌뿌둥해 아침에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나이를 먹으니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그날은 영 아니다 싶었다. ‘오늘은 매사 조심해야겠다’ 생각하며 움직였다. 해가 떨어질 무렵, 주일 남전도회 모임 때 내놓을 과일을 사러 동네 마트를 찾았다. 꽤 많은 사람이 붐볐고 계산대에는 줄이 길게 이어졌다. 과일 한 상자를 고른 후, 들고 갈 수 있게 묶어 달라고 주문하고는 계산대 줄에 합류했다. 기다리는 중에도 짜증과 피곤이 계속됐다. 차례가 돌아와 “저 앞에 끈에 묶인 과일 한 박스요!” 했다. “얼마짜리예요?” 계산하는 분이 묻는다. 아니, 과일값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아는 것 아닌가? 또 가격을 모르면 자기네가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는데요.” “가서 알아보고 오세요.” 순간 혈기가 확 올라왔다. ‘뭐 이런 데가 있어! 손님더러 와라, 가라 하는 거야? 과일 가게가 여기 한 군데뿐인가?’ 계산하지 않은 채 그냥 나와 버렸다. 조금 떨어진 과일 점포로 이동하는 동안, 부끄러움과 심한 자책감이 밀려왔다.
마트 계산원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 마트 앞을 지나갈 수 없어 가까운 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왔다. 무거운 과일 상자를 싼 끈이 손가락을 압박했지만, 그보다는 참담한 마음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계산원이 나보다 더 높고 힘 있는 신분이었다면 과연 그렇게 행동했을까?’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말할까?’마음은 가득한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여름에 일어난 일인데 아직도 마음이 편치 않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갑질이 공분을 사고 있다. ‘갑질’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단어다. 일종의 시사용어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약자인 을(乙)에게 하는 부당 행위’로 보면 될 듯하다. 빈번하게 발생해 ‘갑질 공화국’이라는 용어도 생겼는데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뉴욕타임스에 ‘Gapjil’이라는 용어로 기사화됐고 인터넷 영문 위키백과에도 소개돼 있다.
갑질의 몇 가지 사례를 보면, 00항공 땅콩 회항 사건과 물컵 투척 사건, 00식품 명예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사건 등 ‘오너형’, 00유업 대리점 강매 사건처럼 ‘대기업의 밀어내기형’, 젊은이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열정페이(熱情 Pay)형 등, 그 유형과 계층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갑질사건의 결정판은 최근에 발생한 웹 하드 업체 회장 양○○ 씨 갑질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양 씨 사건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엽기적일뿐더러 반사회적 인격 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사이코패스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갑질이 만연하는 이유는 뭘까? 그 원인과 해결방안은 여러 가지겠으나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개한테 물리면 사흘이면 낫지만, 사람에게 물리면 평생을 가도 낫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다시는 사람을 무는 일이 없도록 인내하고 순종하고 섬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자리를 빌려 마트 계산원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놨으니 내일은 고양이 기지개와 함께 상쾌한 아침이 열릴 것 같다.
/ 윤웅찬 집사(15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59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