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배려’

등록날짜 [ 2019-06-17 13:44:34 ]

부모님 배려 모른 채 툴툴대는 초등학생이나
주님 배려 당연시하는 내 모습 별반 안 달라
이젠 기도와 전도로 주님 배려해 드리고 싶어


초등 6학년인 우리 반 도덕 수업 때 있었던 일이다. 주제는 ‘배려’였다. 아이들에게 “여러분은 어떤 배려를 받았나요?”라고 물었다.

대답이 쏟아지리라 예상했지만, 이게 웬걸? 골똘히 생각하더니 한 아이가 “배려받은 것이 없는데요”라고 말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나도 배려받아 본 적이 없다”며 교실 안이 왁자지껄해졌다. ‘배려’의 의미를 오해하나 싶어서 힌트를 주었다. “가까운 데서 여러분은 늘 배려를 받고 있어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그래도 아이들의 대답은 같았다.

“저희는 배려를 받아 본 적이 없어요.”

분명 2~3주 전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감사한 것을 떠올리며 편지까지 썼는데….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의 돌봄과 보살핌이 끊임없는데도 아이들은 그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가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집에서 불편함 없이 자고, 엄마가 차려 준 아침밥을 먹고, 사 주신 옷을 입고, 부모님이 내준 수업료로 공부하고, 부모님이 사 준 핸드폰으로 유튜브 보다 잠드는 아이들. 물론 집안 사정에 따라 그렇지 않은 아이도 더러 있지만, 하루를 돌아볼 때 부모님께 받은 배려는 측량할 수 없다.

이런 말을 아이들에게 해 주니, 그제야 자신들이 배려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눈치다. “핸드폰은 제가 용돈 모아서 산 건데요?”라고 반문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요즘 담임목사님의 기도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우리 성도들이 평생 기도할 환경이 만들어지게 해 주세요.”

기도하지 못할 환경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신앙생활 할 자유를 빼앗기는 날이 온다면? 매일 기도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환경. 예수 피의 복음이 가득한 말씀을 듣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성경을 꺼내 들고 읽는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갈망하는 삶일 수 있다. 어쩌면 기도 제목일 수도. 주님의 은혜로 어떠한 방해 없이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는 나는 주님께 어마어마한 ‘배려’를 받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감사는커녕 당연하게 여기는 내 모습은 부모님의 배려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제 하고 싶은 것 못 하게 한다고 툴툴거리고, 심지어 혼자 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13세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셨다. 그뿐 아니라 그 은혜를 알고도 여전히 죄짓고 주님을 부인하는 나를 지금도 사랑해 주시고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는 ‘배려’를 베풀고 계신다.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한 주님의 배려도 많다. 이제는 그만 툴툴거리고, 죄와 싸우며 예수의 십자가 피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와 기도 그리고 전도와 충성으로 주님을 배려해 드리고 싶다.




/강유림(고등부 교사)
現 초등학교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62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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