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오빠, 예수 믿자” “아빠, 사랑해요”

등록날짜 [ 2019-09-26 11:41:11 ]

예수 전하지 않은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상처 주고, 무관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음을

뒤늦게 후회 되풀이 하지 않도록

예수 십자가 보혈에 더 깊이 젖어들기를 기도


어린 딸이 “엄마의 엄마는 어디 있어?”라고 물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딱 이맘때, 내가 열여덟 살쯤 엄마가 돌아가셨다. 2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때 즈음이지…’ 하고 애써 구석에 넣어놨던 기억은 가끔 바람에 먼지가 날리듯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그날은 무더위가 한풀 꺾여 초가을 바람이 선선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예뻐서 더 슬펐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이 어이.” 마을 아저씨들이 부르는 상엿소리를 따라 산 중턱 장지에 관을 넣고 오빠 한 삽, 내가 한 삽 흙으로 덮었다.


처음 엄마 없이 보내는 추석은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더 이해하고 위로해 줄걸. 친구 같은 딸이 돼 줄걸. 엄마도 외로웠을 텐데….’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드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반성과 후회를 남기는 듯하다. 다행히 내 어머니는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셨지만, 만약 고인(故人)에게 예수를 전하지 못했다면 그 마음의 짐은 오랫동안 가슴을 후벼 판다.


스물한 살, 친구가 의료사고로 운명했다. 며칠 전까지 함께 웃던 친구를 병풍 앞에서 영정사진으로 마주하자 머리가 아득해졌다. ‘이 친구는 지금 어디 있을까? 예수를 모르는데. 내가 알려주지 않았는데.’ 예수를 전하지 못한 미안함이 너무 커 한동안 교회에 못 나갔다. 나 혼자 교회 가는 것이 이기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한 대학 동기가 군대에서 자살했다. 예수 믿으라고 자주 당부했지만 말뿐인 전도였다.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제대하면 그때 하지’ 미루는 동안 그 친구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을 괴로워하다 생을 끊었다. 화장터에서 유골함에 담겨 나오는 동기를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빨리 예수를 전했어야 했는데!’ 눈물 섞인 후회를 삼켰다.


사람은 참 어리석다. 예수 전하지 못해 후회해 놓고도, 누군가를 가슴 아프게 보내고도 뒤늦은 후회를 되풀이한다. 사람이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한다. 오늘 만나는 이 사람을 내일 만나지 못할 수 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내일이 없을 수 있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에 더 깊이 젖어들기를 기도한다. 내 안에 예수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흘러갈 수 있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죽음을 볼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수 전하지 않은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 상처 주고, 무관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음을 뒤늦게 후회하지 않게 오늘도 내 주변을 둘러본다. “오빠, 예수 믿자.” “아빠, 사랑해요.” “친구야, 오늘도 힘내.”



/김은혜 집사

82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4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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