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10-08 17:06:49 ]
신앙생활 초기엔 전도하러 나가 ‘쭈뼛쭈뼛’
내성적 탓 돌리며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
실상은 핍박받을까 무서워 두려워했던 것
이제 주님께 은혜받은 자답게 당당히 전도
신앙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남들에게 예수 믿는다고 드러내기가 머뭇거려졌다.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식사할 때면 눈치를 살피면서 속으로 기도했고, 전도하러 가서도 행인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전도하기엔 내가 너무 내성적인가 봐’라며 어쩔 수 없는 일인 양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했다.
그러던 중,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신앙양심을 찔렀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낫게 여기고 하나님을 부끄럽게 여긴 죄를 회개하라.” 다른 때라면 큰 깨달음 없이 “아멘” 하고 넘어갔을 텐데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다. 하나님을 부끄러워한 순간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그동안 전도를 못 한 것이 성격 탓이 아니라, 실상 내게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질책인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주님께서는 나를 살리려고 십자가에서 벌거벗은 채 온갖 수모를 겪고 피 흘려 죽으셨는데, 나는 그런 주님을 믿는다고 남들에게 말하기를 부끄러워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전도하다가 핍박받을 것이 무서웠고,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려워 담대하게 믿음을 드러내지 못했다. 내 실상을 깨달으니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했다. 그저 눈물만 흘러내렸다. 더는 주님 앞에서 부끄럽게 신앙생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신앙생활이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받은 은혜를 전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전도하러 나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다. 한번은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는 청년에게 애타는 심정으로 오해를 풀어 주려고 애썼다. 수년간 케케묵을 만큼 쌓인 오해가 단번에 풀리지는 않겠지만, 전도를 마치고 가려는 내게 그 청년이 음료수를 건넸다. 조금이라도 오해가 풀린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다른 사람에게도 힘을 다해 전도했다.
학교에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당당히 드러냈다. 누구와 식사를 하든지 밥 먹기 전에 당당하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나 오늘은 예배드리러 가야 해”라며 교회에 간다는 말도 하게 됐다. 구원받은 감사가 넘치니 힘든 일이 생겨도 주님께 기도하면서 힘을 냈고, 그 어느 때보다 기쁜 마음으로 살았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을 부끄러워한다면 그분도 우리를 부끄러워한다고 말씀하셨다(막8:38). 우리의 죄와 사망과 지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수치와 고난을 참으신 주님을 생각한다면, 주님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그분께 받은 은혜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느꼈을 고난과 부끄러움을 떠올려 보라.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과 창피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또 부끄러워할 만한 일도 아니다.
주님께 은혜받은 자답게 더욱 감사함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죄 아래 살다 죽어 지옥 갈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모든 부끄러움을 참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임현재(풍성한청년회 임원단)
노사발전재단 근무
위 글은 교회신문 <64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