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생명의 길 걷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등록날짜 [ 2019-12-30 14:20:00 ]

눈사태로 눈 속에 갇히면 방향감각 잃게 돼

이때 침 뱉으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어

올겨울 세상의 온갖 염려와 거짓 떨쳐내고

또다시 새싹 틔우며 진솔하게 새해 맞았으면


20년 전, 설악산 토왕성폭포 인근에서 눈사태가 발생해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폭설과 기상악화로 구조가 지연됐고, 구조본부는 미귀환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 후 시신 수색 작업에 들어갔다.


해당 지역 공무원이 동원됐고 나 역시 등산화에 아이젠, 두꺼운 외투와 장갑, 모자로 중무장한 채 수색에 동원됐다. 현장은 삼면이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전면은 축구장보다 넓은 평평한 눈밭이었다. 산에서 쏟아진 눈이 계곡을 메운 것이다. 그 바닥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사망자를 찾아내는 것이 수색팀이 할 일이었다.


전문가들이 탐침봉으로 매몰 예상 지역을 특정하면, 삽으로 눈을 걷어 내는 단순 작업을 이어 갔다. 하지만 겨울 산속의 해는 일찍 떨어지고 하산하는 소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며칠째 수색 작업이 이어지던 어느 날, 먼 곳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곡에 쌓인 눈을 걷어 내던 중 마침내 하얀 주변과 뚜렷이 구별되는 그 무엇을 찾아냈고 구조대원들은 들것 몇 개를 산 밑으로 옮겼다.


멀찍이서 바라보는데 들것에 실린 이들도 며칠 전까지 숨 쉬고, 먹고, 움직였을 것이 분명하건만 도무지 동질감이 들지 않았다. 그 형체가 너무도 미약하고 작아 보였는데 그와 내가 존재하는 경계가 ‘살아 있음’ 그 하나라는 단순함에 몸서리쳤다.


눈사태에 휩쓸려 눈 속에 갇히면 방향감각을 잃는다고 한다. 자신이 바로 누워 있는지 거꾸로 엎드린 상태인지 분별이 되지 않으니 무작정 눈 속을 헤치면 오히려 지상과 멀어질 수 있다. 이때 침을 뱉으면 알 수 있는데, 모든 물체는 바닥으로 떨어지므로 자신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이유다. 흔히 시계를 보지 말고 나침판을 보라고 한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보는지 점검하라는 말이다.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 한다. 켜켜이 쌓인 내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한정된 육신의 시간 중에서도 나는 청장년 시절을 세상에 빠져 지냈고 써 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눈 덮인 아침 산을 걸으면 서릿발 같은 차가움과 형언할 수 없는 청량함이 머리와 가슴을 깨운다. 세상의 온갖 염려와 상처와 거짓으로 뒤덮인 잎사귀를 떨쳐 내야겠다. 그래야 내 영혼의 겨울을 넘을 수 있고 또다시 새싹을 틔우며 남은 시간이나마 진솔하게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이 저문다. 지금까지 내 육신의 때를 연장하시고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윤웅찬 집사 

15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5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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