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2-11 12:19:41 ]
나와 동료·친구·제자·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죄
상황과 환경이 어떻든 나와 하나님 사이에
어떤 것도 흔들 수 없이 견고해지길 소망
직장생활 8년 차다. 나 나름대로는 사회생활의 쓴맛, 단맛을 다 맛봤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다. 학창 시절에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을 읽으면서 ‘공부가 어떻게 쉬울 수 있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공부만큼 쉬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인간관계는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정답도 없어 고민을 거듭하지만, 공부는 노력하면 충분히 통제할 수 있고 정답이 확실하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 나는 누군가와 사이가 어그러지면 신앙생활도 안정적으로 하지 못해 여러 차례 속앓이를 했다. 대학생 시절에는 동기와 그랬고, 직장에서는 동료 교사나 학생들과 그랬다. 교회에서는 같은 청년회 부원들과 얼굴을 붉힐 때면, 늘 믿음의 의기도 꺾였다.
최근엔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과 사이가 삐걱거렸다.
‘나만 친하다고 생각했나? 그 사람은 나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마음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생각할수록 답답했고 우울해졌다. 파장은 신앙생활에까지 미쳤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기쁨과 감사로 드리던 예배나 기도의 열정이 가라앉고, 매사 의욕이 사라졌다. 다행히 기도하며 부정적인 마음을 떨쳐 내고 많이 회복했지만, 한편으로는 주님께 죄송했다. 사람 관계나 기분에 휘둘리는 나를 얼마나 안타깝게 보실까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친한 사람 하나 품지 못해 괴로워한다는 것이 죄송하고 염치없었다.
‘관계(關係)’와 ‘신앙’은 별개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 관계가 삐걱거리면 하나님과 나 사이도 어그러진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우선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마음이 넉넉해 모든 것이 평온하면 주님께 어떤 고백인들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 사랑합니다! 내 평생 기쁨과 감사로 살겠습니다”라는 외침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죽을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던 베드로의 고백처럼, 그것이 진심 어린 고백이라 착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해지고 사람에게 상처받거나 무시당해 마음이 처참하게 상할 때는 “주님, 제 상황과 환경이 어떻든 주님은 제 인생의 일순위이시기에 여전히 감사합니다. 여전히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한 신앙고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상황이 좋을 때가 아니라 좋지 않을 때 판별할 수 있다.
자식과 재산을 잃고 몸에 악창이 나서 고통스러울 때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욥처럼, 나와 하나님 사이가 어떤 것도 흔들 수 없이 견고해지기를 소망한다.
/강혜민(풍성한청년회 임원단)
現 초등학교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66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