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어찌 이렇게 신앙이 식었는가

등록날짜 [ 2020-02-18 21:28:16 ]

얼마 전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다. 씽씽 달리는 자동차가 무섭지만, 아침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는 맛이 무척 상쾌하다.


그런데 비가 추적추적 내린 날이었다. 젖은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다 자전거가 미끄러지면서 주변 인도 쪽 대리석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황급히 자전거에 올랐다. 멀쩡한 척했지만 일터에 도착해 보니 왼손이 붓고 저릿저릿했다. 하루 이틀은 견딜만 했지만 그 후에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손등에 실금이 가서 한 달 동안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몸이 괜찮아질 무렵 다시 자전거를 탔다. 이번에는 경사진 거친 노면을 내려오다가 앞바퀴가 빠지면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배낭이 먼저 지면에 닿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엉덩이뼈 부근에 당구공 만한 혹이 솟았다. 잠을 자다가 다친 부분이 닿기만 해도 깜짝 놀라 깨곤 했다.


사고를 두 차례 당하고 나니 몸이 다 나았는데도 도로에 물기나 조그마한 요철만 있어도 마음이 졸아든다.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브레이크를 잡는다. 사람들이 큰 사고 후 겪는다는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PTSD)’와 유사하지 않나 싶다. 예전처럼 겁 없이 자전거를 즐기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통증은 위험을 피하거나 갑작스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게 하는 신호다. 같은 정도의 통증이 반복되거나 지속되면, 체감도는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몸을 지키기 위한 생존본능이라는 것이다.


청년 시절,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는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예수의 십자가 피의 은혜를 깨닫게 하셔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 죄를 지었다고 생각되면 성경책 뒷면에 바르게 살겠다는 각오로 ‘바를 정(正)’ 자를 쓰면서 회개하기도 했다.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했고 늘 기쁨과 평안이 넘쳤다.


그 당시 아내와 한창 데이트 중이었다. 핸드폰이 없고 만나기도 수월치 않아 적지 않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이성 간 사랑 고백보다는 신앙고백이 주를 이뤘다. 아내는 가끔 내게 청년 시절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더니 지금은 어찌 이렇게 신앙이 식었느냐고 아쉬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기쁘게 들어야 하는데도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 오히려 역정을 내고는 후회한다.


육신은 조그마한 통증일망정 벗어 보고자 위험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데, 영원한 영혼의 때를 준비하는 성도로서 매일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는 자명할 터. 무뎌진 영적 감각을 되살려 늘 주님의 신부로 단장해야 할 것이다.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 중에 “육신의 경건함 없이 영적 정결을 이룰 수 없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윤웅찬 집사

14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66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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