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3-10 14:17:56 ]
새로운 학교로 전보 발령을 기다려야 했다. 5년간 정든 학교를 떠나려니 아쉬움이 컸지만, 전보 발령을 앞두고 바라는 바를 생각하면서 기도했다.
“음, 급식실이 있는 학교로 보내 주세요. 교실에서 급식을 하면 냄새도 많이 나고, 아이들도 힘드니까…. 착한 학생들 만나게 해 주세요. 거친 학생이 많으면 사고도 잦고 아이들과 친해지기도 어려우니까요. 민원 많은 학부모님은 제가 대하기 어려우니, 교사를 믿어 주는 좋은 학부모님 만나게 해 주세요.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보내 주세요.”
10년 넘게 교사로 일한 경험을 십분 살려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젯거리는 최대한 다 꺼내 놓고 두려움 반 걱정 반으로 “이거 해 주세요, 저건 안 돼요”라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중보기도도 부탁했다. 그러는 동안 내 영혼을 위한 기도제목은 하나둘 줄어 갔다.
하루는 부원들과 기도제목을 나누는데 그대로 내놓기에 좀 부끄러워 “새로운 학교로 이동하게 됐는데, 학교에서 스트레스받아 신앙생활에 방해받지 않게 기도해 주세요”라고 쭈뼛쭈뼛 말하고 나니, 내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새로 갈 학교와 관련해 신앙생활은 생각해 보 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도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내 기도제목을 곱씹어 보았다. 착한 아이들, 좋은 동료 교사, 인격적인 학부모, 급식실, 가까운 거리를 다 충족하는 학교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주님이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려면 몇 주 사이에 거친 아이들도 순한 양처럼 만들어 놓아야 하고, 좋은 학부모님에서 친절한 교장·교감선생님, 말 잘 듣는 후배 교사들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선생님들을 다 모아 놓아야 했다. 없는 급식실도 만들어 놓으셔야 하고….
주님도 막막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학교는 없어’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듯했다. 새로운 학교에서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기도해 이겨 나가겠다는 의지는 없고, 세상에서 예수를 나타내겠다는 각오도 없고, 나의 모난 부분을 고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못하는 철부지 같은 내 신앙 민낯을 발견해 얼굴이 빨개졌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내용을 가르쳐 주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 내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내 안일함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를 발견하고 그날부터 기도제목을 바꾸었다.
“어느 학교에 가고 무슨 어려움이 있든 기도해 응답받게 하시고, 신앙생활이 변질되지 않고 예수만 높이게 해 주세요. 영육 간에 성장하게 해 주시고, 배울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며 발령받은 학교는 솔직히 내 바람에 꼭 들어맞지는 않았다. 동료 선생님들이 걱정과 우려를 표현하셨다. 그러나 기도해서일까. 주님이 담대함을 주셨다. 또 어려운 일이 생길 만큼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많이 성장할 것 같아 의지도 생긴다. 새로운 학교에서 날마다 주님과 함께 승리하길 기대한다.
/강유림(충성된청년회)
現 초등학교 교사
위 글은 교회신문 <6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