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5-30 10:57:41 ]
담임목사님의 설교 중 “상처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라”는 말씀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상처 주지 않는 것은 어찌 해 보겠지만, 어떻게 누군가가 주는 상처를 안 받을 수 있을까?’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설교 말씀을 요즘 들어 깊이 공감한다. ‘영적생활에 승리하려면 그 말씀이야말로 참말’로 깨달아지니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 매일 2시간씩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다. 최근에는 ‘가다라 지방의 귀신’이라는 제목의 매일 철야 말씀을 청취한다. 목사님께서 20년 전에 하신 말씀인데, 들을수록 내 신앙의 민낯이 드러난다. 어떤 일을 하다가 누군가 어깃장을 놓으면 금세 의기소침해져서 멈췄다. 그 사람이 미워서 머릿속에서 막장소설을 썼다. 그와는 반대로 내가 내는 분노와 혈기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줄 수 있다는 점은 전혀 몰랐다.
설교에서는 상처받거나 분노로 들끓어 괴로워한다면 악한 영에 속았다고 말한다. 하와가 마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인 아담도 먹게 한 사건은 모든 인류에게 영원한 죽음이라는 아픔을 주었다. 그러나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십자가 피의 사건과 부활이 그 사실을 믿는 자들을 영원한 죽음에서 완전히 살렸고, 나아가 예수 생명으로 얻은 영생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하지만 아직도 악한 영은 죽음으로 이끄는 상처로 인류를 속이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프로이드가 정립한 ‘트라우마’ 이론에 사람들은 속는다. 트라우마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예전에 받은 상처에 몰아넣는다. 분노를 터뜨리고 혈기를 부리는 것을 “나는 이런 상처가 있기 때문이야”라며 정당화하지만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쉽게 풀어 놓은 책 『미움받을 용기』는 프로이드의 이론과 반대로 “모든 사적인 분노는 타인을 굴복시키려는 도구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한다. “분노나 혈기는 칼과 같이 상대를 제압하려는 무기로 사용될 뿐,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러는 그 예로 화를 내다가도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을 때는 침착한 목소리로 통화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우리는 은혜에 빚진 자로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 담임목사님께서 설교 중 “달려가는 열차는 개가 짖는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라는 비유를 자주 사용하신다. 예수로 구원받고 ‘영혼의 때를 위하여’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행복이 있기에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상처받거나 상처 주지 않도록, 이방인에게 미움을 받을 준비가 되도록,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온유함과 겸손함 갖고 무릎 꿇어 매일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황옥경 집사
여전도회 특별활동실
위 글은 교회신문 <67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