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2-13 12:05:16 ]
미국 드라마로 유명한 “로앤오더(Law & Order: 법과 질서)”라는 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언급됐다. 트럼프가 개인 SNS에 자주 올리던 “법과 질서”는 그가 신앙인으로서 세상 법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더 절실하게 요구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정치적 올바 름( 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 공산주의, 사회주의, 마르크스 이론을 근간 삼아 기존의 법과 질서를 해체하고 나름의 정치적 올바름을 다시 세우자는 진보적인 의미로 포장돼 우리의 삶과 가치관 속에 이미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마호쩌둥의 문화 혁명, 프랑스의 68혁명 그리고 머리에 꽃을 꽂고 유토피아를 꿈꾸던 히피문화를 지나 기존의 법과 질서를 반하는 사상은 전 세계 사회, 문화, 정치, 법전반에 녹아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태아의 생명보다 북극곰의 생명과 반려견의 권리를 더 중히 여기는 모습들을 마주한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남자와 여자 둘밖에 없는 성별을 나름의 올바름으로 재해석해 여성으로 성 전환한 덩치 큰 남성과 격투기 링 위에 선 불쌍한 여성의 기사를 접하기도 한다. 유치원에서부터 이러한 성 개념의 혼란을 학습시키려는 현장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너무나도 노골적인 모습까지 그려진 성교육 동화책에 놀라기도 한다. 어릴 적 받았던 반공교육은 이미 사라지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좋은 이론이라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난다. 일할 수 있는 기업을 무너뜨리고 나라에서 주는 복지만 바라보다 종국에는 배를 곯을 일도 우려된다. 교회가 좋은 일을 하고 이웃을 돌아보던 곳이라는 생각은 이제 거짓뉴스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악플의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법으로 성경 말씀이 역차별을 받고,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역차별하는 차별금지법이라는 당황스러운 법안이 지금 캐비닛 속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쿵쾅거리고 있다.
인류 모두가 머리에 튜브를 단 채 집어넣어 주는 것만 받아 사고하고 행동하던 어떤 영상이 생각난다. 이미 세상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지도 모른 채 분노하고 격동하고 올바름을 좇는 줄로 착각하고 몰려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대에 죄를 배우고 접하기 쉬운 TV와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법과 질서’의 근원인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자. “영적생활은 이기는 생활”이라며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애타게 당부하는 주의 사자를 만난 것도 진정 주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하나님 말씀의 법을 모르는데 무엇을 분별할 수 있을까. 니느웨 백성처럼 통회자복하여 겸비하는 내 모습을 먼저 찾고 망가진 질서를 다시 잡아 주신 예수만 바라보는 신부의 믿음을 갖도록 오늘도 기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혹 다른 길이 있느냐 말이다. 다른 길은 파선일 뿐이다.
/황옥경 집사
여전도회 특별활동실
위 글은 교회신문 <68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