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3-04 10:50:37 ]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금지하던 형법 제269조1항과 제270조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는 기존 법률을 전면 부정하는 ‘단순위헌’ 판결과는 다른 것인데, 현행 법률의 일부 위헌 요소를 배제하고 입법부에서 다시 입법을 하라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그러므로 2019년 헌재의 판결은 전보다 낙태 허용범위를 다소 넓힌 낙태법을 국회가 새로 만들라는 요구였지, 낙태법 자체를 완전히 없애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런데 헌재가 대체입법의 시한으로 정한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는 새로운 낙태법을 만들지 않았다. 그로 말미암아 현재 대한민국은 낙태를 규율하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는 ‘입법공백’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헌재의 판결 이전에도 이미 낙태법이 사문화(死文化)되어 사실상 낙태가 음성적으로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낙태법 폐지에 따른 변화가 당장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낙태법 자체가 없는 공백 상황은 우리보다 낙태에 관대한 서구 국가들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새로운 낙태법은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
기독교인 중에는 2019년 헌재에서 낙태를 전면 자유화하는 바람에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알고 있는 분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안타깝게도 전에 비해 허용 수준을 높여야 하지만 새로운 입법을 통해 낙태 허용 기간과 사유를 통제할 수 있다. 또 낙태 전 전문가와 상담을 의무화하고 숙려기간을 제정하는 등 낙태를 보다 신중히 결정하게 하는 절차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낙태를 쉽게 하지 못할 내용이 담긴 새 낙태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새로운 낙태법으로 정부안과 조해진 의원안이 발의되어 계류 중이다. 낙태를 상당히 관대하게 허용하는 정부안에 비해 조해진 의원안은 헌재가 제시한 한계 안에서 태아 보호를 위해 필요한 내용을 상당 수준 담고 있다. 낙태 가능 기간도 최소한도로 줄였을 뿐 아니라 상담 의무화, 숙려기간 설정 등 낙태 사전절차도 꼼꼼히 규정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알리고 국회의원을 압박하는 것은 결국 유권자인 그리스도인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2018년 3월 스위스에서는 랍스터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랍스터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요리하는 사람에게 벌금형을 부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물에 대한 보호의식은 이처럼 강해지는데도 정작 자신들의 자녀인 태아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나 가혹하다. 장기적으로 그리스도인은 낙태가 동물학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잔혹한 인명훼손 행위임을 알려 낙태를 쉽게 여기는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흡연은 법적으로 허용된 행위지만 각종 금연 캠페인과 흡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흡연율을 낮추듯, 낙태가 부분적으로 허용될지라도 그것이 인명훼손 행위라는 인식이 확산한다면 무분별한 낙태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계룡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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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교회신문 <68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