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슬픔 없는 이별

등록날짜 [ 2021-06-01 12:28:25 ]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했다. 부모님 찾아뵙는 것도 조심스러운 시기이나 연로하신 어머니의 생신을 그냥 전화로만 “축하합니다”라고 하기에는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활짝 핀 남녘의 벚꽃은 그 아름다움이 영원할 것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저녁이 다 되어 도착한 시골집은 적막함을 깨고 오랜만에 사람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온 가족이 모이니 어머니도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조촐하게 생신축하 잔치를 하고 저녁을 먹는데 역시 추어탕이 나왔다. 어머니는 내가 추어탕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어머니를 찾아뵐 때면 첫날부터 끝 날까지 추어탕만 해 주신다. 그것도 모자라 남은 추어탕을 싸 주기까지 하신다. “어머니, 매번 고생스럽게 음식 장만 안 하셔도 돼요” 말씀드리려 하다가도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밥 한 술과 같이 떠서 입안 가득 맛있게 먹는다.


다음 날 시끌벅적 하던 식구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어머니와 우리 가족만 남았다. 아내와 함께 먼지로 가득 찬 집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어머니와 꽃구경도 하면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날, 걸음을 잘 내딛지 못하는 어머니와 이별하는 시간,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머니 눈에서 이별을 아쉬워하는 눈물을 보게 되었다. 여태 어머니의 약한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연로한 어머니를 혼자 남겨 두고 떠나려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라는 단어는 세월이 갈수록 애잔함을 주는 말인 듯하다. 자식에게 있어 어머니는 언젠가 되돌아가고픈 고향이자 언제든지 되돌아 갈 수 있는 포근한 안식처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 언젠가 그 고향이자 안식처가 내게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함도 있다.


우리나라도 저출산과 고령사회 진입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보다 장례식장을 가는 날이 많아진 것도 그래서일까.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떠나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같은 시대를 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도 있고, 같이 가는 이도 있고….


그런데 그때 제일 큰 위로는 그가 천국 가는 것일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죽음이 아주 멀리 있다고 느끼면서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믿음이 없어 소망을 품지 않는지도 모른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는 어머니에 대해 육신의 때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나로서는 세월이 갈수록 염려와 걱정이 더 커져 간다. 육신의 고통은 잠시라고 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이 있으면 영원한 좋은 것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믿으셨으면 한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았으면 한다. 그래야 언제가 다가올 그 이별이 슬프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찬양을 불러 본다. “천국이 없다면 인생이란 허무한 것 너와 내가 영혼으로 만날 수 없다면 우리 이별을 어떻게 견디랴.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 얻어 언젠가 또다시 만날 수 있기에 우리 헤어져도 슬프지 않을 수 있어.” 5월 가정의 달 최고의 선물은 예수 믿지 않는 부모님께 영생을 주신 예수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이것이 슬픔 없는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이리라.



/송호동 집사
21남전도회
손해사정사



위 글은 교회신문 <70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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