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11-30 14:20:00 ]
얼마 전 형제들이 설악산을 오르겠다는 계획을 SNS 단체방에 올렸다. 환갑을 넘겼거나 곧 넘기실 분들이 최근 들어 자주 모여 등산을 한다. 활기차게 사는 모습에 막내인 나도 마음이 동해 등산 일정에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강원도로 향했다. 새벽 5시경 산 입구에서 만나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어둠이 깔려 있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새벽이 밝아오자 단풍이 짙게 물든 설악산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마음이 착한 사람이 밀어야 흔들린다는 흔들바위를 가볍게 밀어 본 후 울산바위가 있는 정상을 향해 산을 올랐다. 오르면 오를수록 점입가경이었다. 다만 경사가 너무 가팔라 가쁜 숨을 내쉬면서 마스크를 벗었다가 쓰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때 정상에서 내려오던 등산객 한 명이 마스크를 잠시 벗은 나에게 “그러다 비말이라도 튀면 어떻게 하시려고요”라며 지적했다. 나는 얼른 미안하다며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이내 마음에서 불평하는 마음이 불끈 올라왔다. ‘아니,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여기 온 것인데, 마스크도 못 벗고 내가 뱉어내는 더러운(?) 공기만 마실 수 있나. 안경에는 무슨 습기가 이렇게 가득 찬 거야. 좋은 경치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어지는 자유와 방종. 두 개념 모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자유는 규범 안에서 행동하는 것을 말하며, 방종은 규범이나 규율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임을…. 등산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안 쓰고는 내 자유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벗은 채 등산하는 것은 타인에게 해를 줄 수 있는 일반의 규범과 규율을 무시한 방종에 해당하고, 이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일이며 그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 시국에 세상 문화를 가까이하면서 자유를 넘어 방종했다. 신앙생활 하는 데 사용하던 시간을 다른 일에 사용했다. 주일에도 많은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대충 옷만 입은 채 인터넷만 켜면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이지 않은가. 모이지 않으니 옆에 사는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 관심도 사라져 갔다. 신앙적인 대화들은 언제부턴가 드라마, 주식 등의 주제로 바뀌어 세상 사람들과 구분이 안 되는 삶을 살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부지불식간에 세상이 주는 달콤한 자유가 신앙의 방종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전6:12)라는 말씀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내 신앙에 유익하지 않다면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내게 주어진 자유를 헛된 곳에 사용하고 나를 통제하지 못한 지난날을 깨달았다. 하나님 말씀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것은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것이고, 방종한 삶을 사는 것은 분명한 죄요, 죄의 삯은 사망이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너무 오래 방종을 행하고 있지 않나 다시 한번 반성해 본다.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진리이신 예수께 다시 돌아가야겠다.
위 글은 교회신문 <72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