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3-15 10:53:51 ]
야곱의 가족 70 명이 애굽 고센 땅에 정착한 지 400년이 지났다. 이방 땅에서 극심한 압제를 받으면서도 이스라엘은 크게 번성했다.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때와 달리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점점 옅어졌지만,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시고 계속 지켜보고 계셨다.
하나님은 압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 모세를 지도자로 예비하셨다. 모세는 80년 동안 특별한 인생 역정을 겪으며 연단되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대제국 바로의 권력과 그 배후의 애굽 신들의 세력과 싸우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이라는 해방을 주셨고 바로와 그의 군대는 홍해에서 전멸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전이나 이후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역경이 닥치면 과거의 안일을 그리워하며 거듭 불평했다. 미래의 영구한 평안과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시적인 어려움조차 견디지 못하고 그저 당장의 현실 안주에만 급급한 인간의 근시안적 행태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불평을 쏟아 낸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내 일상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느라 분주하다. 걷기 힘들면 앉기를 요구한다. 앉아 있으면 등을 바닥에 대고 잠시 쉬기를 원한다. 육신이 원하는 청구서에는 성실히 응하지만, 내 영이 요구하는 삶은 곧잘 잊어버린다.
얼마 전, 담임목사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매일 발송하는 문자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사랑하는 연세가족이여, 우리의 삶 자체가 구원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임을 잊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목적지 가나안을 향해 거칠고 황량한 광야를 오랜 세월 행진해야 했다. 구원받은 성도도 뚜렷한 목적지인 천국을 지향하며 행진하는 삶이다. 구원받은 성도로서 나의 삶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로 채워지고 있느냐는 물음에 “주여,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밖에는 다른 단어를 찾지 못했다. 육신의 요구보다 영적생활을 우선하며, 성도들이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애타게 기도하는 담임목사의 모습을 오랜 시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기에 더 부끄럽기도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주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계속 인도해 주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주님께서 세우신 주의 사자를 통해 전하시는 말씀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나의 삶을 이끌어 주신다. 하지만 염소처럼 늘 버티고 저항하면서 육신의 요구를 우선하는 내 삶의 모습이 내 믿음의 현주소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었다. 200만 명 중 단 두 명이었다. 설날축복성회 기간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공중에 들림받을 신부의 믿음에 관해 들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오늘도 어김없이 담임목사님의 문자가 왔다. “만물의 마지막 때에는 기도밖에 없어요. 주여, 연세가족이 자신의 영혼의 때를 위하여 기도하며 살게 하소서.”
/정한영 안수집사
신문발행국장
위 글은 교회신문 <74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