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3-06-26 10:30:43 ]
지금은 마지막 때이다. 최근 한 기사에서 살인사건을 보았다. 이른바 ‘묻지 마 범죄’인데 아무런 원한도 없이, 아무런 사이도 아닌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었다. 그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 인간이 인격적인 감정을 갖지 못하고 어떤 상관관계 없이 사람을 살인하는 시대, 사랑과 마음이 식고 사라진 시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각종 매체로 전해지는 전 세계의 흐름을 볼 때도 마지막 때임을 깨닫는다. 큰 나라들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은 여전히 대립하고 있고, 중동의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갈등 그리고 두 해째 이어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여전하다. 이러한 갈등들로 말미암은 핵전쟁 가능성과 대한민국 땅에서도 언제든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회 흐름에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성경도 마지막 때에 대해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2000년 전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마24:7~8)이라고 경고하셨고,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1~13) 하시며 미혹과 불법이 가득하고 사랑이 식는 마지막 때에 끝까지 견딜 것을 당부하셨다. 오늘날 사회 모습이 성경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성경 말씀대로 이뤄지는 이 마지막 때에 ‘청년인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까’ 돌아본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자 좋은 학벌도 가져야 할 것이다. 좋은 직장이나 세상이 말하는 성공도 나쁜 것은 아니다. 이 땅에서 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앞으로 다가올 육신의 때를 준비하고, 내 삶을 지혜롭게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영혼의 때이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며 훗날 내게 닥칠 영혼의 때는 잠시 잠깐 육신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원하기 때문이다. 젊은 청년의 시절도 영원할 것 같지만 절대 영원하지 않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더라도 겨우 팔십이요(시90:10),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에(고후4:18) 영혼의 때를 더 사모하는 내가 되고 싶다.
육신의 자랑과 수고는 끝이 없다. 그러므로 육신의 때는 소망이 없는 것이다. 오직 저 하늘 소망, 천국 소망이 내 유일한 소망이요, 기대요, 기쁨이다.
청년의 때를 살고 있는 내 삶이 영혼의 때를 위한 삶으로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죄와 사망과 영원한 지옥 고통에서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은혜와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빚진 자의 삶을 내 평생 이어 가고 죽을 때까지 감사와 기쁨으로 충성하며 살기를!
영혼의 때를 우선해 사는 내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80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