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할아버지의 장례식

등록날짜 [ 2023-10-27 14:23:59 ]

천국 잔치 된 장례식 다녀오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떠나보내

죽음은 무서워할 일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에게 영원한 행복



“할아버지…. 돌아가셨대.”


예기치 않게 닥쳐오는 이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잠시의 공백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향년 88세에 큰 지병 없이 돌아가신, 이른바 호상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편안히 소천하셨지만,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인생에 대한 허망함이 밀려왔다. 내게 찾아온 이 허망함은 ‘죽음’이라는 것을 아주 오랜 기간 상기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이유 탓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다섯 살짜리 동생을 먼저 천국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한 번은 겪어야 하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영원의 시간과 공간으로 나아가는 관문인 ‘죽음’. 그 죽음을 너무도 어린 나이에 피부로 느껴 보았기에 가까운 이의 죽음이 남겨진 자들에게 주는 상실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의 죽음도 선뜻 마주하기가 두려워 조문 소식을 들어도 장례식장에 가길 꺼렸고 장례 절차에도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것이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일이라는 수용적인 태도 이면에 두려움과 공포가 있었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 2박 3일을 보내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은 예상대로 어둡고 칙칙하고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단 한순간도 머무르고 싶지 않은 분위기였다. 게다가 부모님과 형제들 사이에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한, 켜켜이 묵혀온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알던 나는 친척들을 마주하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과 달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상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평생을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신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많은 조문객이 찾아와 끊임없이 예배를 올려 드렸다. 장례식장에서 찬양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남겨진 가족들의 영혼의 때를 위한 축복기도가 쏟아졌다.


가족들의 마음 문이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고 이어 여섯 살배기 우리 아들의 천진한 재롱이 파고들자 장례식장은 삽시간에 천국 잔치의 장으로 바뀌었다. 빈소 안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토록 고통스러워 마주하기 싫어하던 죽음의 현실이 기쁨과 환희로 바뀐 것이다. 가족 간에 막혀 있던 담도 열리고 시베리아처럼 냉랭하던 마음에 봄이 찾아왔다.


삼일장이 금세 지나 할아버지의 입관식을 앞두었다. 할아버지의 시신은 차갑게 식어 아무런 미동 없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러 가자는 내 말에 씩씩하게 앞장서던 아들은 무섭다며 내 품을 파고들었다.


“평화야. 할아버지의 육신은 여기 남아 있지만, 진짜 할아버지의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계셔. 우리 꼭 하늘나라에 가서 다 같이 만나자.”


불안해하던 아들은 나의 설명에 안정을 되찾았다. 아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죽음을 두려워하던 나 자신에게도 들려주고 싶던 말이었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 죽음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행복의 시작이라는 것, 천국은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 예수님이 함께 계신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말이다.


할아버지의 육체는 한 줌 재가 되어 할아버지가 평생 사신 시골집 옆 작은 동산에 묻혔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영혼은 이제 이 땅의 모든 수고와 슬픔을 벗고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계신다. 나와 우리 모두가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그 날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19~21).




/심아영

(85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82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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