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지난 2월의 어느 날

등록날짜 [ 2024-05-21 12:50:53 ]

지난 2월의 어느 날입니다. 길고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시작되나 봅니다. 벌써 봄날처럼 따사로운 햇볕이 포근함을 느끼게 합니다. 잿빛 들녘과 을씨년스런 논바닥은 곧 다가올 봄을 시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봄의 콧바람을 느끼고자 차를 몰고 주변 교외로 나서 보았습니다. 마음이 울적하고 뭔가가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았는데 교외로 나오니 그동안 무관심했던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싶습니다. 발길이 닿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천천히 걸어 봅니다. 길가에 있던 앙상한 가로수 가지가 쌀쌀한 바람에 스쳐 흔들립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상한 갈대들과 모진 겨울바람을 견뎌낸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는 가랑잎들 하나하나가 슬픈 소리를 냅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담임목사님의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소식을 접하고 속이 상해 밤새 잠을 설치다가 겨우 잠들어 목사님 꿈까지 꿨습니다. 잠에서 깬 후 지난날 “신앙생활 잘하라”라며 귀하고 귀한 야단을 맞던 그 시절이 왜 그렇게 그립던지….


목사님! 참 많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강단에서 말씀 전하시다 안경을 벗으시며 눈물을 훔쳐내시고, 설교하시다 중간중간 영혼 구원에 애달파 목이 메던 그 시절의 눈물을 언젠가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참으로 착잡합니다. 가슴속에 무언가가 미어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 고개를 들어 다시 하늘을 보았습니다.


어차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정해진, 그래서 가야만 하는 길이라지만 생각만 하면 올라오는 슬픔을 억누르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세월을 따라 나이가 드니 사랑하는 목자와 이 땅에서 겪을 마지막이라는 그 감정이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그동안 목자와 사이에 사랑이 깊었나 봅니다. 담임목사님을 통하여 참으로 많은 말씀을 듣고 은혜가 깊었나 봅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설교 말씀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신령한 말씀이 귓가에 들리더니 이내 뼛속 깊이까지 스며드는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예수님의 말씀처럼 거역할 수 없는, 그야말로 복음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 ‘나 주와 살리’를 찬양하며 천국으로 먼저 가신다고 말씀하실 때면 남아 있는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실 때 가시더라도 건강하시다가 그 날을 맞는 것이 우리 연세가족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목사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면 빨리 가실까 봐 사고뭉치 양들이 말썽을 피우고 있잖아요. 세상에서 상처받아 치료와 기도가 필요한 양들, 고뇌에 빠진 양들, 오늘도 바둥바둥 꽉 잡고 있을 양들을 더 돌보시라고 말씀드리면 너무한 말일까요. 목사님이 먼저 천국으로 훌쩍 가시면 저는 이 지상에서 담임목사님을 볼 수도 부를 수도 없잖아요. 세상에서 다시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잖아요. 다시는 애타게 눈물 흘리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없잖아요.


한낮과 달리 저녁 무렵이 되니 다시 쌀쌀한 바람이 부네요.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 세상에 남아 있는 무슨 말이나 글들이 목사님을 대신할 수 있겠어요. 오직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 잘 믿고 천국에서 만나는 것을 바라시겠지요.


얼마 전 총괄상임목사님 설교 중에서 “나의 최후 수단은 기도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자꾸 뇌리에 박혀 떠오릅니다. 얼마나 은혜가 되는 말씀인지 최후 수단을 바로 알았기에 오늘도 나의 하루를 최후 수단으로 간절하게 마무리합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목사님! 앞으로도 연세가족 곁에 계속 남아 그동안 목사님이 쌓아 놓은 성전의 돌 하나, 나무 하나, 풀 한 포기까지도 보살펴 주시는 주님을 부르며 기쁘게 뵙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을 4부예배에서 뵐 수 있어 참 좋습니다. 가끔 교회 각 부서에 어긋난 부분을 야단치고 바로잡아 주실 때 왜 그리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고 기쁜지요. 어느 때인가 담임목사님의 건강 척도를 ‘야단치실 기력이 있으시구나’라고 헤아리며 목사님의 속이 터져도 우리는 그 야단이 그렇게 고맙고 기쁘답니다.


목사님! 이제 완연한 봄이 오겠지요. 우리 교회 울타리에 예쁘게 피어난 빨간 장미를 배경 삼아 목사님과 화사한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동산에 사과꽃 필 때 목사님께서 우리 양들과 많은 사진을 남겨 주세요. 목사님보다 조금 더 이 땅에 남아 있을 우리에게는 목사님의 모습이 주 안에서 복된 목자를 만났다는 추억입니다. 이제는 안경 너머로 눈물 흘림이 없고 잔잔한 미소와 웃음 띤 모습을 바라며. 봄의 끝자락에서. 



안수집사 안광덕 올림 (9남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85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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