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6-04 10:30:13 ]
어린 시절 나는 정말 사소한 것에 상처를 잘 받곤 했다. 부모님이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고이고 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잘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결국은 나를 향한 애타는 당부였다는 것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자식을 향한 사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수많은 상처가 아물다가 도지기를 수백 번 수천 번 거듭했다. 유약한 한 아이가 어엿한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 끝없는 희생과 고뇌가 뒤따랐다.
지난달 궁동성전 헌당 19주년 감사예배에서 본 ‘교회설립 38주년 기념다큐멘터리’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다. 바로 노량진성전에서 일어난 ‘도끼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내 인생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데, 병원에서 담임목사님을 촬영한 영상을 보니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금요일이 지나고 주일 오전예배 시간에 전 성도가 담임목사님을 위해 금식기도 하며 눈물로 찬양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나조차 목사님께서 병원에 계속 입원해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으나, 바로 그때! 목사님께서 휠체어에 앉으신 채 등장하셨다. 그 장면이 어린 나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기에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기신 분이 어찌 저렇게 바로 설교 말씀을 전하러 오신 것일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어진 흰돌산수양관 성회에서도 휠체어에 앉은 채 생명의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도무지 사람으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 그 당시 어린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다.
담임목사님께서 끊임없이 핍박과 고난을 받으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성장한 나는 목사님을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절대 저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라면 도끼가 날아든 그 장소를 담대하게 갈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도무지 자신이 없다. 하나님께서 견딜 수 있는 고난만 허락하신다는 말씀(고전10:13)이 은혜라는 생각도 든다. 한없이 작디작은 일에도 시험에 빠지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나로서는 내 믿음의 분량만큼만 고난을 허락하시고 지금껏 신앙생활을 이어 올 수 있게 해 주셨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한편으로 아직도 나와 교회를 위한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의 충성 그리고 예수님의 그 크신 십자가 사랑에 걸맞은 사람이 되지 못했음에 부끄럽고 송구하다. 믿음이 연약하고 연약한 내가 언제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할 수 있을지 막연하고 막막하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부끄러움 없이 내 신랑 뵙기를 기도하지만, 현실과 상황에 얽매여 교회에서의 모습과 세상에서의 모습이 다른 이중생활을 일삼으며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내 모습을 주님께서도 얼마나 답답해하실까. 도끼는커녕 작은 가시 같은 고난에도 하나님 앞에 아프다며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런데도 나에게 작은 소망이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는 티끌 하나도 공짜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사해 주시고,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고, 믿음을 지키느라 마귀에게 받은 작고 작은 핍박과 고난 하나까지도 잊지 않고 계수하신다는 것에 감사하다. 지금의 내가 세상 평지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여전히 붙잡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나의 힘이 아닌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0~12). 어떠한 마귀의 핍박에도 천국을 바라보며 기뻐할 믿음을 소유하고 주님이 기뻐하실 영광의 작품을 올려 드리기를 기도한다. 모든 아픔과 상흔을 면류관으로 바꾸어 주실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할렐루야!
/심아영 기자(81여전도회)
위 글은 교회신문 <85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