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만

등록날짜 [ 2024-07-02 14:04:40 ]


<사진설명>(왼쪽부터)이재하 차장, 주인공 신 모 씨, 조영황 부장, 김우종 성도.


몇 주 전 33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주일 오후. 남전도회 새가족섬김실에 보기 드문 손님이 찾아왔다. 머리는 조선시대 쪽머리를 한 듯하고 수염도 깎지 않아 머리카락보다 더 길게 늘어뜨리고 찾아온 남성분. 한동안 씻지 못한 탓인지 모임방에 냄새가 진동하여 사람들이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워했다. 사연 많아 보이는 새가족은 과연 누구일까?


찬양 사역팀에서 뜨겁게 찬양을 올려 드린 후 합심기도를 이어 갔다. 그사이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신 모 씨란다. 첫 만남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뭔가 남다른 인생사가 있을 법하여 토요일에 그가 있을 부천역으로 향했다. 그를 찾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워낙 외모가 한눈에 들어와서 말이다.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근처 식당으로 갔다. 소자에게 물 한 잔 대접한 것도 기억하시는 주님이신데 나에게 이런 영광이 오다니! 밥을 먹으며 노숙하게 된 이유를 알려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8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간에 유산으로 물려받은 아파트를 팔아 생활해 왔노라고 털어놓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8년 동안이라도 연명하며 살아온 게 기적 같은 삶이다. 처음부터 노숙하려고 부천역에 온 것은 아니라고 했으나, 딱히 갈 곳이 없던 그가 우리 교회 전도자를 만나 연세중앙교회에 온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후 새가족섬김실 1부에 배속되어 그를 섬기려고 기도했다. “내게 주님의 심정을 주옵소서. 내 함량과 자존심으로는 섬길 수 없사오니 한 영혼을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심정을 불 일듯 일어나게 하셔서 사랑으로 다가가게 하옵소서.”

그다음 주일에도 교회에 온 그에게 “콧수염이라도 깎아 식사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해 보자”라고 조심스레 권유했다. 어쩌면 그간의 삶에 자존심이랄까,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주님의 애타는 심정으로 뭔가 변화를 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 재차 물었다. 따라오라며 밖으로 같이 나가 “오늘은 이것만 해 보자”라고 면도를 요청하니, 그땐 주저하지 않고 순응하는 모습이 순한 어린양 같았다.


내친김에 머리에 딱지 앉은 부분만이라도 잘라 내면 한 인물 하겠다 싶었다. 마치 조선시대 여인네들이 가채를 두른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님이 주신 용기와 권위로 가위를 들어 싹둑 잘라 냈다. 약 40cm 머리카락이 사라진 탓인지는 몰라도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굳어 있는 상태가 되어 많이 불편해했다. 역사는 이제부터이다. 그렇게 낯설게 느끼던 교회였으나, 그날 글쎄 4부예배와 5부예배도 드리고 가겠단다.


지극히 작은 자를 예수님처럼 섬기며

섬김실 실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보태고 후원하여 당장은 버틸 수 있겠으나 삶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지 않는가. “나는 감추고 주님이 일하시옵소서!” 주일 5부예배에서 눈물의 기도와 찬양을 올려 드리며 주님의 마음을 충만히 달라고 애타는 간구를 부르짖었다.


월요일이 되었다. 선교교회연합회 설립감사예배를 잠시 잊고 약속을 잡은 탓에 이튿날 만나기로 일정을 조율하여 화요일 아침부터 그를 만나기를 고대했다. ‘주님! 오늘은 그의 입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게 하셔서 과거를 캐묻는 신문(訊問)이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눈을 열어 주소서.’

안양6동 주민센터를 찾아가 사회복지팀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하여 부천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야속한 마음도 잠시, 부천으로 달려간 우리 직분자들은 고시원과 입주 계약을 하고 주소를 획득한 후 심곡동 주민센터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긴급 생계비 지원도 요청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거비용과 생계비용이 각각 사회복지로 제도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가 지나서 연락이 왔다. 긴급 생계지원비가 책정되었다며 내일 통장을 개설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 주님의 역사가 이런 거구나 싶어 다시 한번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본인 통장이어야 한다고 몇 번을 강조하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지만 정작 받아야 할 사람은 신용불량자로 통장이 가압류 상태였다. 기초생활비를 압류하거나 인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다행히 있는가 보다.


새가족섬김실의 다른 실원들도 자기 일처럼 옷가지를 서로 가져 오겠다고 하고 필요한 생필품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얼마 안 되지만 보태라고 용돈도 주었다. 감동의 물결이 이어지는 섬김실에는 영혼 섬김이가 여러 명 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날까지 누군가는 이 일을 이어 가야 한다.


내 상황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지만 주님의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영혼 섬김이다. 그것이 쓰임받기에 앞서 기도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오늘도 떨리는 심정으로 새가족을 맞이한다. 주소가 가리봉 소재 모텔이란다. 전화번호는 없다. 이 사람도 노숙자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사람인가.


오늘도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주여! 아무리 실망스러운 날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역사하고 계심을 기억나게 하소서. 맡겨진 영혼이 볼품없는 소자라도 주님이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한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이 모든 사역은 주님이 하셨고 주님의 귀한 사역에 나를 써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여! 한 영혼 한 영혼이 주님의 나라요, 교회요, 마을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5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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