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생수 같은 말 한마디

등록날짜 [ 2024-07-24 11:11:59 ]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히는 장마철이다. 에어컨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대성전은 무척 쾌적하지만, 교회까지 오는 게 문제다. 지난 주일에도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집에서부터 교회까지 오는 데 그만 진이 다 빠져 버렸다. 


양손에는 아이들과 주일 하루 동안 지낼 짐부터 여전도회원들과 점심에 나눠 먹을 반찬에 이르기까지 한 보따리이다. 그런데 철없는 큰아들이 엄마가 좋다(?)며 짐을 든 팔에 계속 매달리는 게 아닌가. 뭔가 인내심이 ‘뚝’ 하고 끊어지는 듯했다. 이어진 엄마의 일갈에 바싹 움츠러든 아이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럴까?’ 얄궂은 참소가 머릿속을 맴돈다.


대성전 로비에 들어서니 땀에 젖은 등허리에 시원한 기운이 닿았다. 이에 심심한 위로를 얻는다. 그런데도 도저히 짐을 들고 상층에 있는 자모실까지 걸어가기가 아찔하여 승강기 앞에 줄을 섰다. 노인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성도들도 계셔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가 마음 무거웠지만 기다리는 줄 뒤에 아이들과 자리했다.


‘과연 이번 차례에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을까?’ 대충 헤아려 보니 아슬아슬했다. 역시나 앞에 서 계신 분들이 승강기에 오르자 나와 아이들이 탈 공간은 없어 보였다. 한 명 정도 탈 자리는 있지만 비집고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안으로 들어오세요! 어르신, 좀 더 들어오시면 애기엄마가 탈 수 있겠어요!”


내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 주었는지 참으로 생수 같은 한마디였다. 엘리베이터 뒤에 계셔서 누군지 확인할 수도 없었는데 그분의 말 한마디에 나와 아이들이 탈 공간이 금세 마련되어 곧바로 자모실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돌아보면 출산 이후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올 때마다 다소 소심한 성격인 나이기에 별일 아닌 일에도 쉬이 위축되곤 했다. 아이들이 갓난쟁이 시절에 큰 목청으로 울기 시작하면 자모실에 있는데도 다른 자모들 예배를 방해하는 듯해 미안하기만 했고, 무슨 수를 써도 아이가 달래지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도 요동치고…. 또 우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 달래느라 설교 말씀 시간이 다 지나가 예배드리러 와서도 은혜받지 못하는 그 허탈감이란!


그럴 때면 우리 교회 믿음의 식구들이나 나이가 지긋한 권사님들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괜찮아요! 애들은 다 울어요”, “애들 운다고 목사님 설교 안 들리는 거 아니니 천천히 달래요”라고 다독여 주셨고, 그때마다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른다. 정말 어떤 날은 그 따스한 말 한마디에 눈물이 날 만큼 큰 은혜를 경험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느새 일곱 살, 다섯 살이 되었다. 아이들이 커 온 나날을 생각하면 모두 하나님이 키워 주셨고, 교회가 키워 주었고, 주변 믿음의 식구들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또 섬기는 말, 사랑의 말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듣고 여기까지 온 듯하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 나도 섬기는 말, 사랑의 말을 내 주위에 전하고 싶다. 아직 내 자녀에게도 그렇게 말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기도하는 요즈음이다.                     


/현정아 객원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8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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