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이루는 만남은 아내와의 만남이다. 세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나에게 결혼을 전제로 한 한 여인과의 만남은 기쁨과 걱정을 동반한 것이었다. 둘이 있으면 행복했고 모든 걱정을 다 잊을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힘들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깊은 걱정과 번민으로 숱한 밤 잠 못 이뤘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린 결국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결혼하였다. 그런데 힘든 결정을 내려준 아내를 위해서라면 주일날 교회에 따라가 줄 수는 있었지만 도무지 설교 말씀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로서는 기독교를 종교(宗敎) 이상으로 생각 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아내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 정말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면 나도 좋겠어. 그렇지만 안 믿어지는 것을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나의 형식적인 신앙생활 때문에 아내와 자주 다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독서하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게 된 아내가 여러 종류의 기독교 서적을 사다 주었다. 그 서적들을 통해서 나는 차츰 기독교에 대해서 알게 됐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그 후, 내가 사업에 실패하여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아내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가져다주면서 들어보라고 했다. 처음엔 쉰 듯한 목소리가 싫어서 듣지 않았지만 아내의 반복되는 권유를 이기지 못해 듣게 되었고 결국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내 심령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고 말았다.
이처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아내와 남편의 사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해(理解)’라는 낱말을 영어로는 ‘understand’ 라고 한다. 이 단어는 ‘under’와 ‘stand’로 되어 있다. 직역하면 ‘서 있는 사람 밑으로 들어가라’는 의미이다. 아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해해주지 않았더라면 심한 신체적 장애를 가진 나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인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내를 통해, 목사님을 통해 나는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육신을 빌어 이 땅에 오셔서 낮고 초라한 죄인 인간을 만나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죽기까지 사랑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을 향한 진정한 이해(understand)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내년 3-4월이면 궁동 대성전건축이 완공되어 수많은 초신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이해(understand)하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죽음보다 강한 십자가의 절대적 사랑과 이해(understand)를 실천하는 길이기에 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