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갈 기회가 있을 땐 난 무등산에 오른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말없이 서 있다. 그곳에서 난 찬송가를 길게 한 곡조 불러본다. 사람들과 있을 땐 소리가 어쩠느니, 음정 박자가 어쩠느니 말이 나오겠지만 산은 그저 아무 말이 없다.
내가 큰 소리로 우리 주님을 “주여--!” 하고 불러봐도 산은 넉넉하게 나의 소리를 되받아주기만 한다. 작은 메아리들이 나의 귀에 들릴 땐 나의 흥이 돋워지는 느낌이다.
산 정상에 올라선 나는 이제 산을 정복했다고 생각하며 산 정상 중에서도 제일 높은 뾰족한 바위 위로 올라가 산 아래 보이는 온 세상을 향해 또 한번 외친다. “내가 산을 이겼다! 내가 산을 정복하였다!” 산은 또 말없이 웃으며 말하는 듯하다. “그래, 너도 한번 그 자리에 서 보아야지.”
산을 내려오면서 한층 겸손해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넉넉한 산 앞에서 너무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다.
산은 어머니와 같다. 믿음의 어머니는 산과 같다. 언제나 날 받아주시고 넉넉히 지켜보신다. 교만하고 오만하여도 온갖 불만을 투덜대도 못난 노래를 잘 들어주며 다독거리는 산과 같이, 어머니는 항상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미소 짓고 계신다. 어느덧 산을 떠나올 땐 너무나 부족한 나를 깨닫듯 훌륭한 어머니에게서 기도와 겸손을 배우게 된다.
믿음의 어머니는 모두에게 산과 같다. 넉넉한 마음으로 또 한 사람의 귀한 생명을 잉태하며 산과 같이 큰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이 또 산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난다. 믿음의 어머니는 많은 사람의 어머니인 것이다.
7월, 우리는 한 사람의 믿음의 어머니가 천국으로 떠난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그분을 직접 만나고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분은 너무나 조용하게 소리 없이 우리에게 예수 믿는 신앙의 본을 보여 주셨다. 빛도 없이 사시다 가셨지만 그분은 떠난 것이 아니고 산과 같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다. 산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낸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
그래, 나도 산과 같이 요동치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겸손하며 흐트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산과 같이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대가 바뀌어도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요동함 없이 마냥 그 자리에서 예수만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
7월, 고향의 무등산에서 나는 산과 같은 한 믿음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30년의 핍박 속에서도 한 믿음의 거인(巨人)을 잉태하며 길러냈던,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며 가족을 구원했던 믿음의 어머니를, 작고 연약했지만 수많은 영혼을 변함없이 품고 사랑하며 절대로 요동치 않았던 넉넉한 우리의 어머니를….
무더운 여름,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도 산과 같은 사람이 되어라.”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라...”
위 글은 교회신문 <7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