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희 판사 칼럼/ 세상을 비추는 작은 불빛

등록날짜 [ 2005-11-09 10:24:18 ]


오늘도 주례를 30여 건 섰다. 무슨 주례를 그렇게 많이 섰냐면 다름 아닌 이혼주례라는 것이다. 법률상 용어로 말하면 협의이혼의 의사를 그만큼 확인했다는 얘기다. 그 자리에 오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20대 초반의 젊은 부부에서 시작해서 60대 노부부까지. 서로 원수진 듯한 표정, 눈물이 가득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부부에서부터 전혀 이혼하는 것 같지 않게 웃으면서 들어오는 부부까지 각양각색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몇 시간이고 시간을 내서 이혼을 만류하고 싶지만 제한된 시간에 비해 사건이 너무 많아서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겨우 몇 분 정도 간단한 확인절차를 거치는 것이 전부이다.
법정에서는 증인들은 사실대로 말하고 만일 위증을 할 경우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의 선서를 하고 증언을 한다. 증인의 말 한 마디에 몇 억원, 몇 십 억원의 향방이 좌우된다. 그런데 거의 모든 증인은 자기가 속한 편에 유리한 증언을 한다. 그 사건의 진실은 하나일 텐데 증인마다, 당사자마다 말이 다르다. 이렇게 말했다가 저렇게 번복하는 모습 속에서 거짓말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법정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대체로 황무지같이 삭막하다. 세상의 온갖 다툼이 집결되는 곳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배신과 거짓말의 경연장 같기도 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얼굴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따뜻한 인정이나 사랑을 찾기는 지난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 숫자가 10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1000만 명이면 전체 인구의 1/4 정도이고, 단순히 계산해 보면 네 명 중의 한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토록 많은 신자를 가진 기독교가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상은 그 규모와 정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만큼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도 직장이나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기독교인의 숫자는 의외로 적고, 찾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마에 기독교인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니니 찾기 어려운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괄괄하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디를 가나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독교인을 만나면 황량한 사막에서 물이 넘치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분 좋은 체험이다.
나는 다니엘 12장 3절에 나오는 말씀인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는 말씀을 참 좋아한다. 빛 한 줄기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산중에서 헤매다가 멀리 있는 인가의 작은 불빛이라도 발견한 사람의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 작은 불빛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울까!
기독교인은 이와 같은 세상의 빛이요, 어두운 세상에서 갈 길을 몰라 헤매는 사람들이 반가워하는 따뜻한 불빛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 모두는 사랑의 리더라고 할 것이다. 리더라고 하여 거창한 직함을 가진 지도자만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인 리더는 말 그대로 캄캄한 세상에서 길을 잃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을 그렇게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갈등과 반목이 난무한 세상 가운데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사랑이 무너져 버린 차갑고 캄캄한 세상 속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불빛이 오롯이 빛나는 모습들....
내가 그 별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소망이 넘치지 않는가.

위 글은 교회신문 <7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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