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간 우리를 분노케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관련 논문조작 의혹 사건이다. 황 교수의 논문 발표에 온 국민이 기뻐했고, 그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가나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반인들은 언론을 통해 줄기세포가 무엇인지, 인간복제가 어떻게 가능하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정보를 얻게 되었고, 그 중 대다수는 인간의 난치병 치료와 생명연장을 기대하면서 황 교수의 연구를 환영하였다.
그의 사건은 현대가 과학의 시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발전만큼 우리들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없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문화에 다양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학시절 같은 서클에서 지냈던 공대생 친구가 있었는데 무신론자였다. 그는 학부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거기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유명한 공과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유학생활 중 성경을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에 한인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예배에도 참석하였다. 주일 예배에 더하여 새벽예배에도 나가기 시작했고, 어느 날 새벽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숙소로 돌아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중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게 됐다. 거기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현실처럼 재생해낸 공룡들이 뛰어 다니고 있었다. 그 순간 지난날의 무신론이 되살아나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그는 결국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그의 교회생활은 끝이 났다.
크리스천의 길에 들어서면 누구에게나 원래의 불신상태로 되돌리려는 끊임없는 유혹이 따라 다닌다. 사람마다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중 가장 뿌리치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과학적 지식일 것이다. 수억 년이나 되었다는 지구의 나이, 공룡 같은 고생동물의 화석들, 오래된 지층들.... 성경을 보고 단순히 계산한 몇천년의 연대기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다. 노아의 홍수가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큰 기대를 가지고 창조과학 서적들을 들춰봐도 그리 시원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창조과학이 지나치게 추측에 기대고 있는 것 같아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성경도 그저 신화나 비유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들곤 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과학의 본질과 한계를 깨닫고 믿음으로 성경에서 답을 찾았지만,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인도가 없었더라면, 어느 날 나도 친구처럼 옛 생각에 설득당해 세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는 것은 기적과 같다고 생각한다. 크리스천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난관-이성(理性)의 도전-을 극복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런 난관에 부딪혀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런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아니 그보다는 이성의 탈을 쓰고 신앙의 본질을 흐려 놓으려는 어떤 시도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크리스천들은 성경적 가치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과학에 19세기적인 지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진화론이 득세한 이래로 과학은 수많은 윤리적,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여 왔고, 기독교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주도권을 상실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며 해답을 갈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적인 대답을 제시하여 주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8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