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신앙

등록날짜 [ 2006-05-15 15:42:28 ]

대학에서 철학과 윤리를 가르치다보니 학생들과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며 대화할 기회가 많다. 필자의 윤리학 수업은 학기 초에 사회의 현안과 관련된 여러 수업주제들을 정해주고 학생들이 이를 조사해와 함께 토론하며, 윤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러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의 도덕의식과 가치관을 살펴볼 기회를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학생들에게도 수업은 그간 소홀히 지나치거나 외면했던 여러 문제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작년주제 중 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임신중절의 문제였다.

올 3월자 경향신문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연간 낙태수술 건수가 연간 34만2천4백여 건에 달하고 낙태수술을 받은 사람의 10명 중 4명이 미혼여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 뿐 아니라 작년 모 국회의원의 조사에 의하면 여대생의 약 48프로가 성 경험이 있으며 그 중 약 24프로 정도가 낙태 경험이 있다고 한다. 통계로야 느낌이 다기 오지 않지만 낙태시술 비디오를 직접 보면 그 모습이 너무 잔인하고 불쌍하다. 집게를 가지고 채 형체도 갖추어 지지 않은 뱃속 태아의 두개골을 깨뜨리고, 사지를 찢고, 종양덩어리를 터트리듯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의 낙태가 경솔한 성관계나 경제적 어려움 혹은 부모가 되려는 준비가 안 된 것이 이유라 하니 생명에 대한 경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생들도 수업 중에 직접 자료화면을 보고 실증적인 통계와 관련기사를 보면서 얘기하다보면 무척 놀라거나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수업과정에서 안타까운 것은 낙태의 통계수치보다도 윤리수업이후에도 그 현상을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묵인하거나 당연시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윤리적 사안들에 접근하다 보면 그 합리성과 이성적 논변에 설득되기에 생명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엔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거나 가치관을 수정하는 데는 소극적인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세상의 학문과 윤리가 인간의 도덕적 교화에 대해 본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신앙이 도덕이나 법보다 우월할 수 있는 것은 살아 계신 절대자를 인정하고 선한 행위에 대해 무조건적 명령으로 이를 실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칸트가 지적했듯이 우리의 모든 행동이 최후에 심판과 보상을 받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윤리적 태도에 있어서도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낙태문제만 보더라도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나 책임과 애정에 바탕을 둔 올바른 사랑 없이 성적인 것을 단지 쾌락으로서 즐기려고만 하기에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오늘날 낙태뿐 아니라 스와핑(애인이나 부부교환의 성관계)이나 집단 혼음 등 얼마나 많은 성적 타락을 심심치 않게 보는가. 이 모든 것은 윤리가 절대성을 상실하고 순간적 향락과 물질만을 좇는 잘못된 인간중심주의가 확산된 결과이다. 이제 교회가 먼저 도덕적 모범과 실천을 사회에 보이고 생명경시 풍조를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리란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인정하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의 생명도 존중하라는 절대적 명령이기 때문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8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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