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수고와 섬김이 필요한지, 밤잠을 자지 못하고 아이의 시중들기에 바빴다. 밥 먹을 시간도, 화장할 시간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세달 정도 보냈을까? 아이를 업고 외출을 하다가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 모든 사람이 지금 내가 수고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없는 섬김을 받은 사람들이구나.’ 물밀듯이 밀려오는 벅찬 감동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귀해 보일수가 없었다. 신분의 고하, 물질의 유무를 막론하고 한 사람이 자라서 어른이 되는 데는 얼마나 많은 보살핌과 섬김이 필요한지, 그때서야 새삼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 후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그가 얼마나 귀하게 보이던지.... 여자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더니 그제야 어른이 되었나보다.
신앙 안에서도 그러하리라. 내가 육신적으로 아이들을 수고하여 키우는 만큼 과연 이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눈물의 기도로 섬기고 있는가? 과연 직분자로서 맡겨진 영혼들에 대해 자식을 사랑하며 수고하는 만큼 정성과 보살핌으로 섬기고 있는가?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이미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섬김과 기도로 오늘의 내가 있음을 안다. 내가 있기까지 나를 맡은 직분자들의 수없는 기도가 있었음을 안다. 그 누구보다도 목사님의 삶을 바라보며 강단에서 죽을힘을 다해 말씀을 전하시고, 밤잠을 설치시며 기도하시는 그 기도가 곧 부족한 나의 영혼을 위한 기도임을 나는 안다. 어린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보다 한 영혼을 바로 세우는 일이 어쩌면 더 뼈를 깎는 아픔이 동반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섬기는 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나 자신을 뒤돌아보며 난 아직도 갈 길이 먼 사람임을 깨닫는다.
위 글은 교회신문 <9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