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온 힐송유나이티드팀이 찬양의 열기로 교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음악은 동시대의 것으로 그 내용은 영원한 복음의 메시지로'라는 이상적인 슬로건을 실현하였고 ‘공연이 아닌 예배'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역시 그 명성대로 세계적인 수준의 찬양집회를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호주라는 나라가 찬양사역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큰 이변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대중음악계에서도 호주는 영국, 미국과 캐나다에 비해 크게 주목받는 나라는 아니었다. 70-80년대 영국, 미국의 팝음악이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킬 때도 호주는 영어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변방에 불과했다. 현대의 워십 음악이 일반 대중음악에 음악적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때, 호주의 워십 찬양이 이 시대의 찬양의 흐름을 주도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의 대중문화로 꽃을 피우고 있는 미국을 제쳐 놓고 변방에 불과한 호주를 선택하여 찬양문화의 중심이 되게 하신 것이다. 부족한 자를 들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더 흥미 있는 사실은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다고 하는 찬양팀을 연세중앙교회에 세우셨다는 것이다. 문화와는 전혀 거리가 먼 구로구, 동네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궁동이라는 외진 곳에 이런 대규모의 멋진 공연장소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찬양집회 동안 나를 들뜨게 만들고 감동시켰던 것은 찬양의 변방국인 호주를 세계 찬양의 중심지로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이요, 작은 지하실 개척교회였던 우리 교회를 이처럼 세계 속에 우뚝 세우신 하나님의 커다란 스케일 때문이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세계적인 수준의 화려한 공연현장과 함께 연희동의 작은 지하실 교회의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전율이 느껴졌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는가' 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 나다니엘처럼 나 역시 하나님의 큰 스케일 앞에서 우둔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9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