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달러, 미국의 헤게모니

등록날짜 [ 2006-12-28 14:25:43 ]

세계 5위의 석유수출국 베네수알라가 원유수출대금을 달러화가 아닌 유로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이란이 원유수출대금을 유로화로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 데 이은 것이다. 이란 국립석유회사는 원유가격을 달러로 결정하고 있지만 수출대금의 절반 이상을 이미 유로화로 결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석유수출국이다. 세계굴지의 석유수출국인 두 나라가 석유판매대금을 유로화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미국의 헤게모니에도 심각한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현재 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미 서부텍사스유와 북해산 브렌트유,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모두 달러로 값이 정해지고 거래된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앞다퉈 가능한 한 많은 달러를 보유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유지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 왔다. 그런데 석유판매대금이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결제된다면 이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더구나 시리아도 지난 3월 석유판매대금을 유로화로 결제하기 시작했으며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 중앙은행들은 외환 보유고에서 달러화의 비중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이라크전 이후 반미 감정이 더욱 거세지면서 달러화 대신 유로화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달러화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원유판매대금의 유로화 결제가 더 확산된다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모든 나라들이 석유를 사기 위해서는 달러 대신 유로화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달러가 여전히 기축통화로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달러화까지 위력을 상실한다면 미국의 헤게모니에는 심각한 타격이 가해질 게 분명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달러화 방어를 사활적 국가이익으로 여기고 있다.
이 같은 달러화 방어에는 군사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력한 경제력 없이는 군사력도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라크전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 개전을 서두른 이유 중의 하나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석유판매대금의 유로화 결제를 선언한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미국은 바그다드 점령 직후인 2003년 6월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라크 석유 대금 결제를 달러로 바꾼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의 헤게모니는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의 조화에서 나오고 있다. 세계 100대 기업들 가운데 50개 이상은 미국 기업들이며 이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돈은 2위에서 8위까지 국가들의 연구개발비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제력이 프랑스를 능가한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의 2006년 국방비는 4,400억 달러로 2위에서 20위까지 합친 것보다 많다. 러시아와 중국의 국방비를 합해도 미국 국방비의 30%에도 못미칠 만큼 미국은 막대한 군사비를 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징후는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유럽의 경제 통합과 중국의 부상, 일본의 강력한 경제력은 미국이 경제적 헤게모니를 상당부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게 군사력 외에 별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라크전에서 보여지듯 헤게모니가 단순히 힘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고 다른 나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라고 할 때 경제력의 상대적 쇠퇴와 일방주의, 전 세계를 휩쓰는 반미감정은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를 부채질하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0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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