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합의’의 초기조치가 이행 시한인 4월 14일을 넘기면서 북한 핵 시설 동결조치가 미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빌미로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BDA의 동결계좌 해제는 사실상 합의 이행의 전제조건이다. 기술적인 문제로 동결 계좌 문제가 난관에 부딪히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답은 ‘포기할 것이다’와 ‘아니다’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느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북한 핵에 대한 입장이 정해지게 된다.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면 핵 폐기를 위해 강경책을 선택하려는 성향을 보일 것이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 협상과 유인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질문은 강경론자와 협상론자를 구분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한 미국 전문가는 북한 핵에 대해 미국 정부의 안팎에 퍼져있는 신념 4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한 국가가 핵무기를 만들기로 결정하면 그것을 중단하도록 설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둘째 ‘악당국가’인 북한이 핵 무기를 가지려는 동기는 외부 세계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것, 셋째 핵 확산의 위협은 북한이나 이란 이라크와 같은 악당국가들에서 발생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어떤 국가의 핵 야망을 포기하도록 하는 방법은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강경론이다.
문제는 이 같은 신념이 얼마나 타당하느냐이다. 러시아나 중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악당국가로 규정되지 않았고 리비아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우크라이나 등은 안보불안 해소와 경제지원을 대가로 핵을 포기한 바 있다. 한국 역시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핵 개발을 추진하다 미국의 압력과 핵 우산 등을 보장받고 포기한 전력이 있다. 위의 신념으로 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북한의 핵 개발 동기는 외부세계에 대한 적대감에서 비롯된 것인가?
경험적으로 보면 15년 넘게 지속되는 핵 위기에서 강경책은 사태를 악화시켰다. 1차 북ㆍ미 핵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초기에 특별사찰과 제재 위협으로 북한을 몰아 부치다 한반도를 제2의 한국전의 위기로까지 몰고 갔고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 역시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카터 방북으로 전쟁위기를 넘기며 협상을 통해 핵 위기를 넘겼고 부시 행정부는 6년여 만에 북한과 협상에 나섰다. 클린턴의 방북이 성사되었다면 핵 위기는 해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앞으로 부시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북한이 핵 개발에 나선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북한은 전쟁 내내 계속되는 미국의 핵 무기 사용 위협에 노출되었고 전후에는 한국에 배치된 미국의 핵 무기를 두려워했으며 대응책으로 핵 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이후 소련과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고립된 북한은 핵 무기 보유를 곧 체제 생존으로 여겼다. 이는 북한의 가장 큰 핵 보유 동기는 안보불안이라는 의미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지구상에서 몇 몇 나라들은 핵을 포기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진정으로 안보불안을 해소하고 경제지원을 약속해도 북한만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은 타당한 것인가? 북한이 끝까지 핵을 포기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핵 보유나 폐기냐 선택이 북한에게만 달려있지는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10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