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느 신문의 경제면 기사가 나의 눈길을 사로 잡은 적이 있다. 어느 기업체에서 공대 출신 신입사원들을 뽑았는데 상당수가 전자제품의 기판회로도를 읽지 못해 기업에서 재교육을 시켜야 했다는 보도였다. 정상적으로 대학의 전공교육을 마쳤다면 공대생으로서 회로도나 설계도면은 당연히 읽어야 하는데 관련된 기초과목을 수강하지 않아 생긴 에피소드인 것이다.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것을 취업을 한 이후 회사에서 새로 배우다 보니 사회적 비용과 시간 손실이 컸다며 대학교육을 비판하는 씁쓸한 기사였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그 기사의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아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기초과목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새 학기가 되면 학생들은 자신이 수강할 과목을 정하고, 시간표를 짠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교양필수, 전공필수 등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과목이 많아서 흥미와 상관없이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문, 국어, 철학, 역사 등의 인문과목이 필수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필수과목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과목이 자유 선택으로 되어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아무래도 재미가 있거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과목에 학생들이 몰리고 순수 교양이나 기초과목은 외면을 받는 일이 많다.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체로 10~20여 명 이상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개설된 과목은 자동으로 폐강이 되고 만다. 문제는 이런 일이 구조화되면서 고등교육에서 획득해야 할 인문학적 소양이나 기초학문의 교육이 소홀해지는 일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공대생 이야기도 그런 에피소드의 하나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이 학문을 연마하고 교양을 쌓는 곳이 아니라 졸업장을 받고 취업준비를 하는 취업 학원으로 변질 되고 있다. 대학의 본래 기능이 전인적 인격을 갖춘 인재양성과 학문의 심화 연구에 있다고 할 때 대학 교육의 초점이 취업준비에만 맞춰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익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시장논리와 경쟁시스템이 대학에 침투하고, 대학생들의 최대관심사가 취업이 되면서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학과나 과목이 축소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연애심리학’ 같은 흥미 있는 과목이나 ‘취업 특강’, ‘생활영어’ 같은 것에만 학생들이 온통 몰리는 불균형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물론 대학이 최근에 변화된 사회 환경에 맞추어 학생들에게 유익하면서도 장래에 도움이 되는 교과목 마련에 신경을 쓰고 학생들을 배려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대학생들이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가꾸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학문적 역량과 지식을 쌓는 데 대학교육이 기여를 해야 하고 그것이 더 대학교육 본래의 의도에 맞지 않을까?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직업교육이 아니라 대학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고차원의 교육을 수행하면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의 덕목과 삶을 고민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사람을 키워내는 일에 대학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갈수록 사회가 혼탁해지고 흉흉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물질 만능적이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더불어 사는 상생의 윤리와 먼 안목으로 삶을 통찰하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위 글은 교회신문 <14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