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찾아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일인 9월 9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확인하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올해 66세로 칠순을 바라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동안 당뇨병과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리 정보기관도 이를 오래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등 5대 권력기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성서약’을 하고 김 위원장의 병세가 통치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파악되면서 와병설 파장은 일단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다음 달이 고비이다. 북한은 다음 달 초 10·3 북핵 합의 1주년과, 10·4 남북정상회담 합의 1주년, 10월 6일 북·중 수교 59주년, 10월 10일 당창건 63주년 등 국가적 기념일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빠져서는 안되는 행사들이다. 예년과 달리 추석에도 공식 행사에 불참한 김 위원장이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 북한 주민들의 동요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번 기고문에서 북한의 후계 딜레마를 언급했지만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 북한이 어디로 갈 지는 누구도 모른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이어 받은 권력을 3대까지 세습시키고 싶겠지만 김일성 주석 때와는 달리 체제 이완이 심하고 후계 작업이 확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3대 세습은 어려울 듯하다. 이 때문에 많은 연구자와 전문가들이 군부 집단 지도체제를 예상하고 있지만 북한 권력기관들간 암투와 권력 다툼이 심해 집단지도체제 역시 확고한 대안으로 여기기도 어렵다.
이도 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북한의 내전 상황과 급속한 붕괴이다. 북한 지역 내에서 급격한 권력의 진공상태가 발생할 경우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른 힘들이 거세게 밀려 들어올 것이 자명한 데 이는 결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북한의 후계 구도에 우리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북한의 장래가 한국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 세기 넘게 분단 체제의 굴레 아래 속박되어 온 두 개의 한국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왔다. 이 쌍둥이 형제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사회주의 종주국 구 소련이 망하고 공산주의의 망령이 사라졌지만 남과 북은 극한의 대치를 계속하며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이 확인되면서 한반도에 운명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음이 자명해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자연수명을 누린다 하더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더구나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지난 달 2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원상복구를 고려하겠다고 밝히면서 한반도 핵 위기는 다시 되풀이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북미간 핵 합의가 진정한 한반도 비핵화보다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와 맞물려 한반도 정세는 안팎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 메케인 대통령 후보나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철저한 북핵 검증을 요구하고 있어 잠깐 순풍을 타는 듯 하던 북미관계는 앞날이 불투명하게 됐다.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북한이 국가 성격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 우리와 같은 성격의 국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에서의 급변 사태는 외세 개입의 좋은 빌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다가올 북한의 중대한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북한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을까? 북한은 정상국가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위 글은 교회신문 <14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