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이른바 ‘묻지마 살인’ 때문에 대한민국이 온통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원래 ‘묻지마 살인’은 일본에서 자주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병리 현상으로 불특정 다중을 대상으로 살인이나 공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일본에서는 이들 범죄자를 ‘길거리의 악마’라 부르는데, 한 달에 평균 한번 꼴로 ‘묻지마 살인’이 발생하여 시민들이 큰 불안에 떤다고 한다.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들은 범인과는 아무 면식이나 원한도 없이 단지 우연한 계기로 그 자리에 있다가 희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여자, 어린이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범행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도 경제난이 가중되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회를 대상으로 한 이러한 흉악범죄의 피해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03년의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은 무려 192명의 사망자와 148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올 초에도 강원도 양구에서 30대 남자가 운동 중이던 여고생을 칼로 수차례 난도질하여 죽인 사건을 비롯해 유사한 살인사건이 네 건이나 있었다. 문제는 불행하게도 이런 현상이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점차 확산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 대부분은 극도의 소외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되는 피해의식이 큰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형적으로 왕따나 외톨이가 많으며, 외모나 직업 등 여러 면에서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과거처럼 공동체적 결속이 강하여 갈등을 나름대로 해소하고 도움을 주는 사회적 층위가 다양할 때는 사회부적응이 범죄로 발전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산업화,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전통 공동체가 붕괴하면서 사회 갈등의 구도가 개인과 사회전체로 바뀌는 경향이 많다. 여기에 만약 장애와 같은 육체적 핸디캡이나 성격장애가 더해지면서 사회로부터 배척되면 이런 개인들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
범죄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모순이 합리적 방식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공동체의 매개와 중재 없이 개인들에게 직접 전가되면서 다양한 정신질환을 앓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십 년 넘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통계에 의하면 2003~7년 우리나라 변사자 사망원인의 51.4%가 자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과 관련해서 청구된 진료비가 거의 1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화약고처럼 우리 사회가 정신적, 도덕적으로 심하게 병들어 있는 것이다.
이제 심화되고 있는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교회가 사회의 아픔들을 치료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예수 당시 귀신 들리고, 병들고, 가난에 시달리고, 소외된 많은 이들이 예수께로 나와 위로를 받고 치유함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복음은 영혼의 치료약이자 소망이기 때문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4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