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백인 매케인을 제치고 흑인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은, 혁명에 버금가는 선택에서 우리는 변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갈망이 얼마나 절실한지 읽을 수 있다. 지난 8년, 부시 대통령 임기 동안 미국은 급격히 쇠약해졌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는 너무 빨리,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다. 전비로 4조 3천억 달러를 쏟아 붇고도 미국은 이라크에서 허우적대고 있고 지금도 한 달에 150억 달러씩 꼬박 지출하고 있다. 더구나 7천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투입해야 하고 내년 국방비로는 7천억 달러 넘게 지출해야 한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처했고 미국은 정치, 경제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상실해가고 있다. 오바마는 미국의 리더십을 재건하고 회복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은 오바마 정권의 동북아 전략이다. 탈냉전 이후 한미 관계는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 정권이 엇갈리며 갈등을 빚어왔다. 과거 김영삼과 1기 클린턴, 김대중과 부시, 노무현과 부시 정권에서 그랬다. 한미 관계가 조화를 이룬 것은 김대중과 2기 클린턴, 이명박과 2기 부시 정권의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이번 역시 민주당 오바마 정권의 출범으로 이명박 보수 정권은 미국의 진보 정권과 앞으로 4년 동안 보조를 맞춰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되었다. 더구나 금융위기로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시장개입과 규제를 강조하는 오바마 정권은 규제완화와 철폐, 정부 역할 축소 등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펼치는 이명박 정부와 FTA 협상 비준 등에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는 급격한 진전이 예상된다. “상대를 벌주기 위해 대화하지 않는 것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한 오바마의 말에서 북한이 핵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남북관계 경색도 감내할 수 있다는 이명박 정부와의 근본적인 인식차이를 엿볼 수 있다. 오바마는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공언한 바이고 오바마 진영에서는 초당적 대표단을 파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본격 출범하면 평양에 외교 대표부나 연락사무소가 설치되고 정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제가 핵 문제와 함께 북미 간에 전향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미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핵 문제 해결 뒤에 관계정상화라는 부시 행정부와는 다른 전향적인 입장이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은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미 관계가 크게 진전을 이루는 경우 한국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한반도 문제에 있어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외교정책은 전통적으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그랬고 오바마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공화당과는 달리 동맹의 틀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이고 국제사회에서 일방주의가 아닌 다자적 협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국제주의이다. 또한, 문제 해결에 있어 이념보다는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중시해왔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동북아 정책에서 일본을 중시했던 공화당과는 달리 중국을 중시해 왔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처럼 오바마 역시 중국 중심의 동북아 정책을 펼치고 미중 관계까지 진전을 이룰 경우 한국은 자칫 고립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일본 역시 지금은 보수적인 아소다로 정권이 집권하고 있지만 자민당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고 오자와 이치로의 민주당의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 이명박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되고 있지만 정책 전환은 쉽지 않다. 북한과 이미 서로 할 말, 못할 말 다 쏟아놓은 터에 이명박 정부는 그럴 듯한 명분이나 돌파구가 주어지지 않는 한 대북정책을 갑자기 전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8년 전 부시 행정부는 북미 수교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던 클린턴 행정부의 성과를 전면 뒤집으며 북한과의 모든 대화와 교류를 중단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며 ‘악의적 무시(malign neglect)’전략으로 북한을 압박했다. 그리고 6년 후 부시는 이렇다 할 설명이나 해명 없이 대북정책을 180도 전환하고 북한과의 양자 대화에 나서는 한편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급기야 테러지원국까지 해제하기에 이른다. 부시 대통령이 밟은 전철에서 한국이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위 글은 교회신문 <14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