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실시된 전국 초, 중학교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성적조작, 미달자 고의누락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일제고사는 학생들의 학업능력에 따라 차별 교육을 실시하여 평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시험 석차가 매겨지고 당국이 이를 학교 지원 정책에 반영하려 하면서 학교 간 우열이 비교되고, 석차에 따른 위화감이 발생하는 등 심각한 폐단이 많다.
새정부 들어 교육에서도 시장 논리가 중심이 되면서 입시 위주 교육의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번 고려대 수시입학 논란에서도 드러났듯이 대학자율화도 본래 의도와 달리 주요대학이 특목고 출신 학생들을 독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데 기여하고 있다. 자식들을 우수 학교에 보내기 위한 학부모들의 노력이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무한경쟁을 강요받는다.
결국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 적응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낙오되고, 하층으로 전락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정책 당국에서 생산성과 경쟁 강화의 관점으로만 교육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교육 목적의 하나가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여 집중 훈련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가와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교육의 또 다른 목적은 인성 교육과 기초 교양훈련을 통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의 혜택은 소수 엘리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베풀어져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공부한 프랑스에는 최상급 고등과정에 두 가지 시스템이 공존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전문 엘리트를 위한 특수과정으로 ‘에콜’(Ecole, 우리말로 학교)로 불리는데 여기 학생들은 보통 정부장학금을 받고 공부하여 졸업 후 전문인력으로 활동한다.
또 하나는 우리식 대학으로 학과별로 전공을 심화시키면서 장래를 준비한다. 이 외에 요리, 음악, 미술 등 특수 목적의 ‘에콜’이 많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시스템들이 우열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과 기능에
따라 구분된다는 것이다.
대학은 에콜보다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을 받는 곳이 아니라 석, 박사 등 학위를 주는 곳이기에 에콜 출신도 공부를 계속하려면 대학에 다시 진학해야 한다.
에콜은 교육 분야에 따라 학교별 차이가 아주 다양하며, 주로 취업 등 실용적 목적에서 운영된다. 프랑스는 모든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처럼 일류대, 삼류대의 구분도 없다.
필자는 프랑스 교육시스템이 우리보다 우수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프랑스도 재정적자로 교육여건이 갈수록 나빠지기도 하고, 우수인력이 외국에 많이 진출하는 등 문제가 많다.
하지만 적어도 최종 학력이 개인의 일생을 평생 따라 다니지도 않으며, 우등생과 열등생의 구별이 당연시되지도 않는다. 교육의 본래 목적이 건전한 시민의 양성에 있다는 생각에 충실하려고 국가가 노력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좀 더 모두를 위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위 글은 교회신문 <15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