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가면 나무숲을 미로처럼 만들어 놓은 금녕 미로 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공원 입구 안내판에는 이곳에서 1시간 이상 헤맬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모두 무시한 채 자신만만하게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곧 키를 넘는 나무, 계속 반복되는 비슷한 길 때문에 쉽게 출구를 찾지 못하게 되면서 “이거 장난 아니네”를 숨 가쁘게 연발하게 된다. 다급해질수록 그 상황에서 믿는 믿음의 대상도 달라진다. 심지어 자신의 팀을 이탈하여 다른 팀을 쫓아가기도 한다. 이처럼 확신과 믿음이 순간순간 사정없이 부서지는 곳이 미로이다. 결국 결정적인 탈출의 실마리는 먼저 그곳을 빠져나간 사람들이 미로를 위에서 바라보며 길을 일러주면서 찾게 되었고 그제야 사람들은 그 소리에 방향을 잡고 출구를 찾아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
믿음과 방향이 무너지는 미로
미로도 일종의 길이다. 일반적인 길이 목적지를 잘 이어주는 것이라면 미로는 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혼란을 준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미로는 고대 지중해 크레타섬에 있었던 라비린토스(Labyrinthos)라는 미로라고 한다. 오늘날 미로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래브린스(labyrinth)도 여기서 유래하는데, 이 미로는 미노스 왕이 머리는 소요, 몸은 인간인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가두려고 만들었다고 하는데 끔찍하게도 미로에 들어와서 만약 출구를 찾지 못하면 그 괴물에게 잡아먹혔다고 한다.
이처럼 미로가 풀리지 않는 매듭, 위험, 곤란한 지경 등을 상징하기에 사람들은 세상을 미로 같은 곳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것을 믿기 마련이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살면서 그런 믿음과 방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미로처럼 변해버린 것은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부터이다. 하나님을 떠나 출구 없는 미로 속에 갇힌 줄도 모르고 마치 미노타우라스라는 괴물이 언제 달려들어 죽일지 모르는 죽음의 위협에 떨면서 사는 것이 오늘날 인간의 영적 실체이다.
미로를 뛰어넘는 자유
성경에서 미로와 유사한 곳은 광야라 할 수 있다. 미로가 폐쇄된 공간이라면 광야는 사방이 열려 있어 방향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시고 약속의 땅으로 가기 전에 미로와 같은 광야에 그들을 데려다 놓으셨다. 그들에게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그들의 방향을 인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다. 결국, 40여년 간의 긴 광야생활에서 그들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만이 절대적인 믿음이라는 그 한 가지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구원하신 것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시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인생 미로의 출구가 되어주셨다. 그를 믿는 자들에게 나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거기에 그치지 않으시고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지켜 주신다. 성령이 함께하실 때 삶은 더 복잡한 미로, 황량한 광야가 아니다. 성령과 함께 할 때 문제가 홍해처럼 갈라지고 인생의 미로를 훤히 내려다보며 불가능과 한계를 뛰어넘는 수직상승, 자유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를 일으켜 주는 그분이 있기에 나보다 더 큰 내가 있게 됩니다.”라고 찬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5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