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3남인 김정운을 공식 확정지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진 듯하다. 이로써 다음 후계자가 누구냐, 장남 정남이냐, 정철이냐를 둘러싼 수년 간의 논란이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다음 후계자가 누구냐가 우리에게 관심인 이유는 우리가 북한과의 통일을 당위로 여기고 있고 그만큼 우리가 북한을 미래와 직결시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령절대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결정이 곧 국가의 결정을 의미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다음 최고지도자가 누구냐는 북한의 국가 성격과 진로를 내다볼 중요한 가늠자가 된다.
이제 관심은 김정운 후계체제, 즉 3대 세습이 성공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김정운 후계체제 성공 여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먼저 김정운의 후계자로서의 자격을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북한의 한 고위 당 간부 출신 탈북자는 김일성이 제시한 후계자 기준을 언급하고 있다. 김일성은 생전에 후계자 조건으로서 김일성 가계를 의미하는 ‘만경대 혈통’과 외부세계에 물들지 않은 자, 수령 생존시 수령을 보좌하면서 선대수령의 사상과 위업, 덕성을 완벽하게 체현한 자로 제시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이 기준에 따라 김정일을 후계자로 낙점했으며 김정일은 김평일 등 이복형제들과의 권력투쟁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쟁취했다.
김정운은 김일성의 손자로 만경대 혈통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승계자 김정운과 형 정철의 생모 고영희는 김 위원장의 3번째 부인으로 정실부인이라고 할 수가 없다. 김일성이 인정한 김정일 위원장의 정부인은 2번째 부인인 김영숙이었지만 김영숙과의 사이에는 딸 하나를 낳았을 뿐 결혼생활이 오래 유지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첫째 김정남은 딸 가진 유부녀였던 성혜림을 김정일이 강제로 이혼시키고 낳았던 아들이라 후계자로서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가계를 언급하는 것은 멸문지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혈통상의 결함이 드러날까 우려해 김 위원장은 세 아들을 모두 외국에서 공부를 시켰다. 이 점도 역시 김일성이 제시한 후계자 기준의 결격사유이다. 북한 인민들 입장에서는 김정운이 생소할 수밖에 없고 김정운 역시 인민들의 밑바닥 생활을 비롯한 북한 내부 사정에 얼마나 정통한지는 미지수이다. 더구나 90년대 초반 고난의 행군시절, 수많은 인민이 굶어 죽으며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김정운은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경험이 없다.
김정일 위원장은 매제 장성택과 군부의 실무 총책임자들을 국방위원회로 영입해 국방위원회를 사실상 최고권력기관으로 만들어 정권 안정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정운 후계체제도 국방위원회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단기적으로는 3대 세습이 성공할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 당국은 김정운 업적 쌓기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것이 남북관계 혹은 북미관계 경색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운이 26살로 어린 데다가 할아버지나 아버지에 비해 카리스마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정일도 유훈 통치를 할 만큼 아버지의 후광에 의지했는데 장기적으로 김정운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북한 당국으로서 가장 크게 위기의식을 느끼는 부분은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언제 다시 쓰러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미 74년에 후계자로 낙점돼 아버지 김일성 우상화를 주도하며 사실상 공동정권을 운영했다는 점에 비하면 김정운은 많이 늦은 듯하다. 이 때문에 대체로 김정운이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같은 신격화된 수령지위를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며 북한 정권은 어떤 형식으로든 모습을 달리할 것이라는 게 현재 거의 일치된 전망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6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