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세계 경제를 통해 전 세계의 경제 위기로 퍼져 나갔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 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얼마 전 일간지상에 3억 5천만 원의 빚을 10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전부 다 갚았다는 한 남자의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여 년 전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고 빚에 쫓겨 도망 다니다가 재기의 의지를 불태우며 송곳니를 뽑기도 했다. 스스로 고통을 택한 것은 나약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보통 7개, 많을 땐 10개나 되었고 하루 20시간씩 일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 마흔을 갓 넘겼을 때고 빚을 모두 갚자 어느새 쉰이 됐다. 꼬박 10년을 빚만 갚으며 보냈다. 빚 갚는 동안 1000원짜리 한 장 집에다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접하며 그를 10년 동안 절망하지 않고 이끌어온 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그는 인터뷰 중에 “남들이 잠든 새벽시간에 일거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라고 말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절망감 속에 희망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비관적인 상황에서 그는 도리어 행복해했다. 남들만큼 자지 못하면서도 그저 일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현재의 절망감에서 벗어나겠다는 강한 삶의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며, 그건 아무리 육체가 고단하고 힘들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를 견디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그에겐 예수도 없었으며 주님이 주신 약속의 언약도 없었다. 절망의 긴 터널을 자신의 굳은 삶의 목표 하나만으로 지탱해왔다. 그렇지만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예수가 내 안에 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확실한 언약도 있다. 그럼에도 삶의 무거운 현실에 부딪혀 쓰러지고 넘어졌을 때 일어서지 못하고 계속 좌절한다면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숟가락을 쥐고 앉아서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와 무엇이 다를까?
위 글은 교회신문 <16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