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기의 좌우 대립을 제외하면 한국사회의 내부갈등이 사회 전체를 분열시킬 정도로 심각하거나 서로를 향한 극단적인 폭력으로 표출되지는 않았다. 단일 민족의 역사를 한반도에서 유지해온 우리나라는 종족, 민족 갈등이나 종교적 이유로 서로 반목하지 않고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해왔다.
70~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학생운동과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사회를 들끓게 하기는 했어도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용산 철거민 참사, 쌍용 자동차 사태, 촛불시위, 좌우대립 등 한국사회에 확산되는 갈등은 점차 극단화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다.
금년 6월에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7개 선진 국가 중 네 번째로 사회갈등이 심한 나라이며, 1인당 GDP(국내총생산액)의 27%를 갈등비용으로 지불한다고 한다.
이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언제부터 한국사회의 갈등이 고질병처럼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전체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서로 비난하고 대립하면서 그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음을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한국사회의 분열과 ‘너 죽고 나 죽자’식의 극한 대결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사회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렇듯 갈등이 심화되면 그것이 사회구성원 간 적대감을 심화시켜 사회 발전을 위태롭게 하면서 한국사회를 후진국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사회의 결속력을 높이며, 나아가 단합 된 역량을 모아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혹자는 강력한 공권력의 회복과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적 리더십을 통한 사회적 안정을 대안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는 다원화 시대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면서 선진화의 세계사적 주역이 되려면 권위주의 모델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미 한국사회는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권리의식이 증가하고 다양한 계층적 이해관계의 분화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세계화 시대의 국제 교류를 통해 엄청난 문화적 변화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효율적인 사회 통합을 이루면서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하는 상생의 정신과 관용이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최근 국내에 번역된 『사도바울』이란 저서를 통해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유태교의 편협성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박애적 사랑과 서로를 존중하는 형제애에서 찾는다. 바디우가 보기에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사건을 통해 구축한 새로운 교회는 혈통이나 지역이 아니라 그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예수 안에서 하나 되는”(갈4:28) 진정한 연대적 공동체였다.
기독교의 아가페적 사랑이 로마의 세계 시민정신과 결합되면서 로마는 도시국가의 틀을 벗어나 세계적인 제국이 될 수 있었다. 사랑과 관용은 언제나 칼보다 더 강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16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