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가 10월 1일부터 공공시설과 지하철, 공항 등에서 시범적으로 우측보행을 시행했다. 우측보행을 하면 좌측보행에 비해 보행속도는 1.2~1.7배 늘고, 충돌횟수는 7~24% 줄어든다. 심리적 부담은 13~18% 줄고, 심리적 안정을 나타내는 뇌파인 알파파는 증가한다. 보행자 교통사고도 약 20% 감소하는 등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선 우측보행이 먼저였다. 1905년 대한제국 경무청은 보행자와 차의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규정했다. 그랬던 것을 일제가 들어서면서 강제로 좌측통행으로 바꿨다. 무사문화가 중심이었던 일본에선 왼쪽 허리에 찬 칼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좌측보행을 실시해왔다고 한다. 이를 우리나라에도 강요한 것이다. 이제 좌측보행 88년 만에 우측보행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측보행은 어색하다. 붐비는 지하철 역사는 여전히 좌측보행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몸에 밴 습관이 자꾸 내 몸을 좌측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오랜 세월 동안 몸에 배도록 훈련한 것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우측보행이든 좌측보행이든 사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로는 우측으로 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좌측으로 향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몸에 배어버린 습관은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몸을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습관은 나를 위험천만한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 혹 신앙에서도 오른편에 가고자 하는 나를 왼쪽으로 이끄는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끌려다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겠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2~34)
위 글은 교회신문 <16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