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들이 2009년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선택했던 말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이 말은 『논어』에 나오는데 ‘남과 사이좋게 지내지만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화이부동에는 또한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면서 화합을 도모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올 한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 생각해보면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로 갔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그 폐해도 적지 않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사회갈등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는데 87.3%가 사회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며, 그로 인해 매출액 감소, 대외신인도와 기업 이미지 추락, 신규 투자의 포기 등 피해가 크다고 했단다. 올 한해에도 ‘노사갈등’, ‘반복되는 시위’, ‘흉악범죄의 증가’ 등 적지 않은 문제들을 우리사회는 경험하였다. 너무 큰 사건이 많다 보니 아예 뉴스 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정부에서도 최근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사회통합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하여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갈등이 심화되는 요인의 하나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무관용의 풍토와 그릇된 공동체 중심주의를 들 수 있다. 산업화를 넘어 고도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분화되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개인적 권리의식을 내세우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대립이 늘고 있다. 그런데 가족적 질서와 정서에 입각해 개인보다 공동체의 우위를 강조하는 전통적 가치관은 아직도 영향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특정한 권위나 전체의 이익을 더 내세우면서 소수자를 억압하거나 희생을 강요하면서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밀어붙이기 식 도시재개발 사업의 와중에서 발생한 ‘용산참사’가 한 예가 될 수 있다.
진정한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약자, 이방인,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을 품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갈등발생을 소통의 부재에서 찾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분쟁의 원인에 눈을 감을 위험이 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소통 자체가 아니라 상대의 처지를 미루어 헤아리면서 배려하려는 소통의 정신이다.
편협한 유대민족 중심주의에 빠져 니느웨의 멸망을 바랐던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셨다. 사람은 원래 자기를 중심으로 매사를 판단하기에 상대의 잘잘못에 민감하고 선악의 이분법을 쉽게 적용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모두가 구원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대상들이다. 예수님도 남의 눈에 티를 보기 전에 자신의 눈에 들보를 먼저 보라고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치셨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좀 더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회가 통합되도록 노력하자. 정치권이나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이 있겠지만 진정한 화이부동은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1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