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1-18 14:49:24 ]
미래는 개척하는 자의 몫
준비하는 자세로 임해야
역사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의 사실을 규명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이 존재해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매우 달라졌을 텐데’ 하고 무릎을 치며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들은 수없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신라 대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큰 땅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좀 더 유연하게 펼쳤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빨리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어차피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은 조선시대 소현세자가 인조의 다음 왕이 되었다면,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가 좀 더 빨리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다.
병자호란으로 청의 볼모로 잡힌 소현세자는 청에서 독일인 신부 아담 샬 등 예수회 신부들과 교류를 맺고 가톨릭과 서양문물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볼모의 위치에서도 소현세자는 탁월한 외교능력으로 조선의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나갔고, 백성의 신망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편협한 군주였던 아버지 인조의 시기 속에서 소현세자는 결국 독살 당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가 만약 청에서 받아들인 서양문물을 좀 더 일찍 조선에 들여올 수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기독교를 대표하는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일 뿐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성경 속에서도 참으로 많은 안타까운 일들이 존재했지만 결국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위해 구원의 십자가를 지셨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등한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섭리는 있지만 그 시기를 좀 더 일찍 앞당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날들을 안타까워하고 후회하기 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개척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7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