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2-01 13:36:59 ]
첫 번째와 마지막 사역이 모두‘포도주’와 연관
주의 공생애 전체는 오로지‘피’에 있음을 시사
가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예수님도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먹게 하였으니, 술 마시는 것이 정당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사람은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잔치만을 붙들고 술에 대해 정의하려 하지만, 실상 성경은 술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잠언 23장 31절에는 “술을 보지도 말라”고 경고하며, 에베소서 5장 18절에는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때 ‘취’자는 술 취할 ‘취’(醉)로 아는 이가 많으나 실상 원어에서는 가질 ‘취’(取)의 의미가 더 강하며, 영어성경에도 “Do not get drunk on wine”(NIV)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즉 마시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왜 하필이면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이 포도주를 만든 것이었을까? 불치의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던 놀라운 일이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이적보다 오히려 못한 것(?)인가?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포도주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와인과는 차원이 다른 포도즙으로 생각해야 한다. 6개월 이상의 건기를 겪어야 하는 이스라엘에서는 물 대신 포도즙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처럼 물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물이 다른 여타 음료수보다 훨씬 값이 비싸다. 그래도 왜 하필이면….
그 해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마지막으로 행하신 것도 바로 ‘신 포도주를 머금었다’(요19:30)는 것을 새삼 알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유월절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포도주를 “내 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떡을 떼시며 “내 살”이라고 하셨다.(눅22:19~20) 우리가 ‘주의 만찬식’에서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마시는 것과 같고, 이것은 주의 특성대로 살겠다는 우리의 다짐이기도 하다.
포도주를 피로 대입하면, 예수님은 첫 번째로 피를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그 피를 먹음으로써 오로지 그의 공생애 기간 동안 그의 사역이 ‘피의 사역’임을 온 천하에 알리신 것이다. 그것은 피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수 있고, 피로써만이 우리가 깨끗함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앞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드신 후에 연회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이를 받아 마셨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좋은 맛을 지녔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첫 번째 표적을 본 후 예수를 믿기 시작했으며, 성경은 이 표적에 대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예수님의 보혈을 경험한 사람은 누구나 안다. 이 세상 그 어떠한 것보다도 더 값진 것은 예수님의 보혈이며, 그 보혈이 우리를 구원하고 이웃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7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