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2-22 16:19:56 ]
미움 잉태되지 못하도록 사랑으로 죄 속성 덮어야
현재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를 기념하는 각종 추모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위령 미사에서부터 김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전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부터 계속되고, 한국 천주교 순교자박물관에서는 오는 5월까지 추기경의 유품전이 열린다. 또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추모음악회가 열렸고, 서울 가톨릭미술가회에서는 작품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든 그렇지 않든 많은 이들이 이 추모제에 관심을 갖고, 그의 생애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
이와 같은 추모제를 보면서, 김 추기경의 위상이 최소한 불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분명 예수보다 위에 있다고 여겨질 것 같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고인이 된 한 명의 인간을 그리워한다기보다 한 명의 성인(?)으로서 그를 추앙하고 있는 듯하다. 마리아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에게도 기도하며 간구하기도 한다고 한다.
위의 일들을 생각하며 성경구절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는 말씀이 생각난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이 구절을 마치 서로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선행을 많이 하면 그 선행으로 자신의 죄가 사하여지고, 또는 타인의 죄까지도 덮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가톨릭에서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성경 구절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저주스런 말을 했다고 하자. 그럼 난 화가 날 것이고, 그를 저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가 언젠가 변화되어 나에게 용서를 빌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마치 망나니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부모처럼, 아마도 그를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저주할 뻔한 그 죄가 나에게 와서 다시 죄로 잉태되지 않고 사랑으로 덮여버린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수차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 하신다. 그리고 원수까지도 역시 사랑하라 하신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 영혼을 바라보며 그로 인한 미움의 죄가 자신의 속에서 작용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죄가 작용하도록 내버려두면 그것이 장성하여 결국 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약1:15) 따라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결코 행위로 다른 이의 죄가 사하여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행위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분은 오직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그 구원을 지키기 위한 행위만 있을 뿐이다. 우린 서로 사랑해야 한다. 죄가 내 속에 잉태되지 못하도록 미움의 싹이 내 속에서 작동하지 못하도록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그로 인해 영혼의 때 값진 보상을 얻는 귀한 성도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
위 글은 교회신문 <18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