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생자 예수를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맘 알고 믿음의 본 보여야
기자가 자랄 때만 해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위상은 대단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집안의 법이요, 규칙이었다. 아버지와의 긴 대화를 한 적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아들은 아버지와 소통할 줄 몰랐다. 엄마 모르게 용돈이 필요할 때만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필요한 돈을 타냈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내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했다.
기자가 장성하여 결혼하고 아들을 양육하면서 아버지가 삶의 고단함으로 인해 내쉬었던 한숨과 절망의 모습이 떠올랐고,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하나씩 깨닫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버지는 몰라보게 늙어가셨다. 아들의 마음을 아버지께 한 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만날 때마다 뭔가 말씀을 드리려 했지만 입을 열지 못한 채 마음으로만 아버지를 바라봤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하시려고 가정을 만들어주시고 아버지와 아들로 살게 하신 것은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아들에게 큰 시련과 위험이 닥쳤을 때 그것을 외면하는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서라도 그 아들을 위기와 절망에서 구하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기까지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비켜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요청을 외면하셨다. 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기에 아버지로서 아들 예수를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이실 수밖에 없었던, 그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내 심령에 부딪힐 때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것저것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를 많이 드리게 된다. 마치 철부지 아들이 자신이 갖고 싶은 세상의 욕망을 아버지의 돈으로 채우려고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기도 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낙담한다. 그러나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가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아버지는 아들의 본질이 된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세상을 배우고 알아간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마음을 알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으리라. 그러기에 나도 아들의 믿음이 되는 아버지가 되어야겠다.
고영대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18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