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3-08-19 10:02:15 ]
우리 군 지휘권이 유엔군사령부에 처음 이양된 것은 1950년 6·25사변 발발 직후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다급한 위기 가운데 군을 통합해 지휘하려고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한국군의 지휘권을 이양했다. 휴전 후 1954년에는 유엔군사령부가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계속 행사한다’는 내용을 한미합의의사록에 명시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국제적 냉전이 완화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북한과 공산권이 한국 방위의 주축인 유엔사를 해체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하자 한미는 연합 방위체제의 안정성을 높이고자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고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사에서 한미연합사로 위임했다. 이로써 한미연합사가 한국 방위의 주축이 되고 유엔사는 ‘정전체제 관리’와 ‘유사시 다국적 전력 제공’ 기능을 수행하는 이원 체제를 형성했다. 한국의 국력이 신장된 1994년에는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 합참으로 넘어왔다.
이후 참여정부 때인 2007년 한미는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2012년 4월 17일부로 한국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천안함 폭침 등 군사적 위협이 고조되자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했고, 2015년에는 박근혜 정부가 시점을 못 박지 않고 한국 방위에 필요한 일정 조건이 충족되는 때에 전작권을 받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당시 한미가 합의한 조건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연합 방위 주도를 위해 필요한 한국군의 핵심 군사 능력 확보, 둘째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능력 확충, 셋째는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와 역내 안보 환경 조성이다.
이 중 총 세 단계로 검증이 진행되는 첫째 조건은 현재 2단계까지 합격했고 3단계 평가가 진행 중이다. 첫째 조건 최종 합격 후에는 나머지 조건도 충족해야만 전작권 전환이 이루어지지만, 조건 충족 여부는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아 결국 정책 결정자의 결심이 전작권 전환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전환 여부와 그 시점을 예단하기 어렵다.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한미연합사와 유엔사 사이의 관계이다. 현재 한미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부사령관은 한국군 대장이 맡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사시 17개 유엔사 회원국에서 전력을 제공받아 한반도로 전개하는 임무를 맡은 유엔군사령관까지 겸직하고 있어, 한반도 유사시 한미 연합군뿐 아니라 유엔 다국적군까지 통합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작권이 전환되고 나면 한국군 대장이 한미연합사령관을 맡고,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던 주한미군사령관이 부사령관을 맡게 된다. 한 사람이 겸직하던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이 각각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한반도 유사시 증파되는 미국의 69만 증원군과 17개 유엔 회원국의 다국적군 전력을 한국인 연합사령관이 통제할지 미국인 유엔군사령관이 통제할지에 관해서는 한미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한미연합사령관이 국군과 현재 주둔 중인 주한미군 2만 8000명을 통제하고 유엔군사령관이 증원 전력을 통제하며 전투를 수행하게 된다면, 한 전쟁을 두 사령부가 분리해 치르는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19년 에이브럼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 유엔사를 별도의 전투사령부로 만들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나, 앞으로 한미 연합 전력에 결손이 없도록 유사시 두 사령부의 역할에 관해 한미 간 공식 협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자국의 대규모 부대가 타국의 지휘를 받도록 한 전례도 없거니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유사시 증파되는 미군 전력에 핵 추진 항공모함, 전략 핵잠수함, 전략 폭격기(B-1B, B-52), 스텔스 전투기(F-22, F-35) 등의 전략자산이 포함되는데, 미국이 이런 압도적 전력을 통제하는 권한을 한국인 연합사령관에게 쉽게 넘길지에 대한 의문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이 실제로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그리스도인은 이 문제가 한미 연합 전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소되도록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튼튼한 국가 안보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의 기반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81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