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법무부 새 여성장관의 임명은 우리 사회를 한동안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서열과 학연으로 짜여진 남자들 야망의 철옹성, 그 견고한 아성에 웬 여자 짱? 어쨌든 이런 파격적 인사정책을 시작으로 새 정부의 개혁은 서서히 물고를 트고 있습니다. 전해 듣는 소식은 별로 신통치 않지만 그래도 기대 반 불안 반으로 아침엔 신문, 저녁이면 TV 뉴스 쪽에 눈길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 지도자의 가슴 복판에 새겨진 변화의 의지는 세상을 바꾸어왔습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입증하고 있지요. 링컨의 의지는 노예해방을 가져왔고, 백성에 대한 세종대왕의 긍휼은 한글을 창제케 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알게 된 한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가슴 속으로까지 뻗어 내린 역동적 의지는 변화를 창출해 낸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범인(凡人)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영혼 구원 사역에 있어서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한 사역자가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까지’라고 고백했을까요!
“머리로만 알고 있던 성령의 임재하심을 요즘 가슴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던 한 목사님이 지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하던 말씀입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유학 출국 날짜를 기다리던 중, 악덕 기업가에게 억울하게 당한 외국인 근로자를 돕다가 의분에 겨워 시력을 거의 잃고, 현재 외국인 선교에 삶을 내어놓고 있는 그 이, 그 남다른 사역을 10여년간 해오신 분이 이제야 성령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에 좀 의아했습니다.
“가방 끈이 다소 긴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의 생애가 지식으로 머물기 쉽거든요, 그것을 가슴으로 끌어 내리기가 참 힘들어요.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긴 여행이라 생각돼요.”
어떻게 가슴으로 내리느냐는 질문의 답은 참으로 단순하더군요.
내려 놓기. 욕심, 야망, 분노, 자아를 하나씩 내려놓다 보면 웬만한 도전이 와도 별로 요동하지 않게 되고 그때에야 비로소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마음 속에 뿌리내린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믿노라 하는 사람들은 수 없이 들었을 법한 말씀이지만 뜻대로 않되는 것이 바로 이 ‘내려 놓기’ 같습니다. 이것을 빗겨 갔던 수많은 권력가들 -믿는 자든 안 믿는 자든- 이 패가 망신한 사건들을 요 몇 년 사이 질리도록 보고 들었지요. 그렇기에 예수님은 간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라(마20:26-28), 또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고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는 자는 얻을 것이다(마10:38-39)고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비밀 열쇠는 바로 내 자아가 깨질 때 비로소 참된 힘이 나온다는 그 위대한 역설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 가슴 구석구석을 차지하게 내드리는 것,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긴 여행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내려놓기’에 굼뜬 제 모습에 결코 조급증을 내지 말아야겠습니다.
꽃샘 추위의 훼방을 무릅쓰고 봄 꽃의 꽃망울이 터져 오르듯, 성령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킨 눈부신 저의 모습은 기나긴 여행 중에 준비된 보장된 선물이니까요.
위 글은 교회신문 <4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