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종아리 근육까지 제거하는 극단적인 성형수술 왕국이다.” 이것은 미국 경제 일간지(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 내용입니다. 반발의 여지가 있었을 법도 한데 국내 여론이 시끄럽지 않았던 것은 그 보도가 우리나라의 ‘실제 상황’이었다는 것, 바로 그 ‘실제 상황’의 파장을 제가 요즘 톡톡히 겪고 있습니다.
“처진 눈 밑 근육을 수술하면 10년은 젊어 보인다기에 한 건데…”
이틀에 한 번 꼴로 걸려와 저를 시달리게 하는 친구의 전화는 늘 이렇게 시작됩니다. 젊어지고 싶어 했던 수술이 잘못 되는 바람에 눈이 고양이 눈처럼 되어 인상이 아주 사나워졌다는 거지요. 도저히 얼굴 들고 거리를 나가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는 그녀는 요즘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이 생겨 정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불행한 상태에 빠진 건 그 친구뿐만이 아니더군요. 조사에 따르면 1999년 402건, 2000년 789건, 2001년 1267건, 2002년 1272건으로 수술 후유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쌍꺼풀 수술 초등학교 4-5학년, 코수술 만16세, 얼굴 윤곽 수술 만18세, 지방 흡입 수술은 20대 이후 가능” 압구정동 한 성형외과 홈페이지 안내문처럼 성형의 파워는 이제 어린아이들까지 그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뻐지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당연한 바람이지요. 그러니 성형수술은 개인의 선택일 뿐 그것을 남들이 뭐라 할 수도 없는 경우입니다. 하나님도 외적인 아름다움을 정죄치 않으시니까요. 또 치명적인 신체 부위의 장애를 고쳐서 새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당연히 권장해야 할 행위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남들과 비교해서 더 예뻐지려고 하는 욕구가 가히 우상 숭배화 되어 외모를 앞세우는 사고가 전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욕구는 각종 매스컴과 인터넷 사이트의 광고에 편승하여 끝 모를 꼭지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제 친구의 예 외에도 극단적으로는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게 일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성경 속의 아름다운 사람하면 단연 다윗왕의 아들 압살롬입니다. 그는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외모(삼하14:25)를 가졌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잘난 외모로부터 키워졌을 교만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본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는 중심을 본다’(삼상16:7).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아름다움은 바로 중심에서 발산하는 참 빛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면 당신의 수술대에 얼굴이 아닌 마음을 올려놓으십니다. 그리고 병든 자아를 회복시키시는 성형을 하십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열등감, 낮은 자존감이 치유됩니다. 진정한 사랑, 목적, 아름다움이 살아납니다. 그분의 은혜와 사랑의 시술로 이루어진 수술대에선 부작용이란 없습니다. 후유증도 없습니다. 이렇게 재창조된 그분의 자녀들은
‘세상의 풍속을 쫓지 말라’(에베소서 2:2)는 명령에 순종할 능력이 있습니다. 치유된 마음이 반사된 그들의 얼굴은 빛나고 부드러우며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전8:1) 라고 했지요. 그리고 이런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성형을 약속하셨습니다. 완벽한 온 몸의 성형,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받은 새로운 몸을 말입니다. 그것과 함께 영원한 생명도 선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선택된 자들만의 선물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강남 압구정동 입구엔 이런 광고가 있지요. “외모는 경제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렇게 광고합니다. “믿음은 경제다” 라고 말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