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처

등록날짜 [ 2004-06-25 17:40:03 ]

올해 프랑스 칸 영화제 그랑프리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영화 ‘올드 보이’.
어린시절 오대수(최민식 역)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은 이우진(유지태 역)은 오대수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복수를 펼친다는 줄거리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치유 되지 못한 상처’의 파괴력에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사실 ‘상처’, ‘마음 상함’ 이란 누구나 겪는 우리네 일상 중 한 부분이지요.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내면에 꽁꽁 숨어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분노, 무기력, 우울증 등으로 표출 되고 심지어는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손길로 치유하는 것이 바로 ‘내적치유’고 그 효과 또한 사회적으로 높이 인정받고 있습니다.
비단 개인뿐이겠습니까? 공동체 속에 깊이 스며든 상처도 무서운 파괴력을 지니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긴 상처, 이것은 53년 동안 대물림되며 이 땅 위 사람들의 삶을 옥죄어 왔으니 말입니다.
지난 6월 6일 발표된 주한 미군 12,500명 감축 안을 보고 마음 편했을 사람이 이 나라에 얼마나 될까요?
사실 젊은이들은 실감 못하겠지만 전쟁을 직접 겪었거나 어릴 때부터 전쟁 발발 불안에 시달려 온 중년 이상의 사람들, 그들이 ‘미군 일부 감축’이라는 소식 앞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즉시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발 빠르고 돈 있는 사람들은 미국 LA에 땅과 집을 사느라 현지 땅 값을 급등시켜 놓고 있다나요.
“나처럼 돈도 기동력도 없는 사람들은 할 수 없지 뭐 기도하다가.......”
친분 있는 모 교회 집사님이 저에게 하던 말입니다. 미래가 구만리 같은 외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한숨지으며 말입니다.
6.25 전쟁 1년 전 1949년에 있었던 ‘미군 철수’, 그리고 2004년 6월의 ‘미군 일부 철수 예정’. ‘철수’라는 공통 안에 대해 53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군사력이면 유사시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지 전쟁에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요.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승자든 패자든 참혹한 피해를 당하게 되니까요. ‘철군’과 ‘주둔’ 사이에 존재 하는 상대가 갖는 도발 유혹의 큰 차이,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 두려움의 정체지요.
“구약의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지. 하지만 서울 밤하늘 속에 펼쳐지는 붉은 십자가들을 봐. 이 땅에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지 않겠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민족의 상처를 싸매시고 위기에서 건져 내실 거야. 하나님의 바로미터는 믿는 자들이거든.”
요즘의 뒤숭숭한 마음을 털어 놓은 제게 모 교회 전도사인 친구가 하던 말이었지요. 그러면서 새벽예배 때 나라 위한 기도를 한 시간 이상 늘렸노라고 덧붙이더군요.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위기는 찬스라나요?
그날 저녁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과 부딪치는 용기보다는 참는 것과, 부탁하는 것, 그리고 주장 하는 것 사이의 절묘한 균형 감각! 그것을 발휘하는 지혜를 이 민족에게 달라고 말입니다.
상처를 싸매시고 위로하시는 만군의 왕, 하나님의 자녀 됨이 그날따라 왜 그리 듬직하던지요.

위 글은 교회신문 <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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